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150,660
오늘방문 : 5821
어제방문 : 17300
전체글등록 : 3,867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0-04-03 (토) 21:3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042    
[4/2/10] 정사기념예배 - 십자가의 고난의 의미를 안다면
십자가의 고난의 의미를 안다면 (요한복음 19:17-30)
종종 금으로 장식된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여인들을 볼 때, 그저 아름다운 장식으로 하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자신의 믿음을 나타내거나, 자신이 신자임을 자랑하기 위해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2000년 전에 그런 장식을 하고 다녔다면 모두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며 미치광이나 정신병자로 봅니다. 이유는 그 당시에 십자가는 말할 수 없는 수치와 모욕의 상징(symbol)이었습니다. 아주 천한 계급의 사람들 중 큰 범죄자들에게 지워주던 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쳐다볼 수 있는 높은 언덕 위에, 극악(極惡)한 죄인들을 처형하기 위하여 세워지던 십자가였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여관에 방이 없어 마구간에서 태어나고, 30세가 되기까지 목수 일로 아버지를 도왔으며, 3년 동안의 사역 기간에도 머리 둘 곳 조차 없으시던 예수님께서 마지막 그의 삶을 마감한 곳이 바로 '해골'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골고다(갈보리) 산 위의 십자가였습니다(요 19:17). 그 십자가 위에 주님은 그의 지친 몸과 가시 면류관에 찔려 핏자국이 흥건한 머리를 기대면서, 궁극적인 심판자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실 때, 메시아로 오신 아들을 저주하며 십자가에 못박는 그들을 향한 복수나 공정한 심판을 부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비를, 용서를 구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생의 두 번째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시어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죽게 할 수 밖에 없었던, 마음 아파하며 기다리던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를 받으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때문에 그 후 2000년 동안 십자가는 많은 예술가, 시인, 건축가, 음악가, 정치가, 심지어 보석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어 왔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 2010년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여 다시금 그 십자가의 고난의 의미를 새겨보기 원합니다. 왜냐하면 그 고난의 의미를 안다면, 우리도 이 세상에서 믿음 때문에 당하는 어떤 고난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에서도 구약의 성경을 인용한 말씀이 있듯이(24절), 예수님 십자가의 사건은 이미 주님 오시기 1000년여 전부터 예언되었던 것입니다. 메시아의 고난은 시편 22편에도 손과 발이 창에 찔리심(16절)과 뼈가 상하심(14,17절), 옷이 찢어지고(18절) 모욕과 멸시를 당하심(12-13절)들이 생생하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또 이사야 53장에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오신 메시아의 고난과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심이 전체적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진정으로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은 . . .

첫째로, 채찍질을 당하셨습니다(사 53:5, 마 27:26, 막 15:15).
필요하지도 않았던 심문이고, 반드시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빌라도는 예수님을 채찍질하도록 하였습니다. 사형에 해당하는 죄인에게 주어지는 형벌이었습니다. 그 당시 두 종류의 채찍질하는 것이 있었는데 하나는 유대법에 있는 것과 로마법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유대 율법에는 40번 이상은 채찍질 하지 않도록 되어 있으나(신 25:1-3), 로마법에는 더 잔인하게, 잘 훈련된 사람이 때리도록 되어 있는데, 가죽으로 감겨진 짧은 나무에 그 끝은 뼈조각이나, 쇠조각을 단 것으로, 때리는 수도 정해지지 않고 죽지 않을 정도까지 때린다고 합니다.
이 채찍으로 6 ft 정도 뒤떨어진 곳에서, 예수님의 다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른편 몸, 그리고 가슴까지 피부와 살이 뜯길 정도로 로마 군인이 때렸다고 Jim Bishop 박사는 그의 책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날"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로마 군병들에게 온갖 조롱과 멸시를 당하셨습니다(사 53:3, 마 27:27-31, 요 19:23-24).
채찍에 맞으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벌거벗김을 당하게 되고 잔혹한 군병들은 피 흘리시는 몸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며, 주님 주위를 돌며 갖은 못된 말로 비난합니다.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마 27:27-31) 고 마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러운 침 뱉음을 당하며, 저주하는 소리를 들으며, 뺨을 맞기도 하시면서도 입을 다무셨습니다. 본문 23-24절에도 주님의 옷을 취하며, 속 옷까지 제비를 뽑아 나누어 가지는 군병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세째로, 골고다 언덕으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걸어 가셨습니다(요 19:17, 19).  
당시 로마법의 관례대로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는 사람은 채찍에 맞은 후에 반드시 처형장까지 그 십자가를 메고 가야 했습니다. 다른 두 행악자들과 함께 아무 죄도 없으신 분이 여느 중 범죄자처럼 십자가를 지시고 예루살렘 성을 가로질러 갈보리 산으로 오르셨습니다. 유월절 기간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찾아 왔기에 이 광경을 봅니다. 예수님은 너무 잘 알려진 분이었기에 그들 대화의 주제가 됩니다. 약 6 ft 되는 십자가 나무를 지시고 오르십니다. 물론 가시다가 너무 힘드셔서 자꾸 쓰러지시고 가지를 못하시니, 군병이 옆에 있던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억지로 지우게 합니다(눅 23:26). 주위에는 백부장을 지휘관으로 로마 군병들이 둘려져 갑니다. 목에는 약 1 x 2 ft 나무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이라고 쓰인 패를 매달고 올라 갑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자칭 유대인의 왕' 이라고 바꾸라고 하지만 빌라도는 자기 쓸 것을 썼다고 합니다(21-22절). 그런데 사도 요한은 기록하기를 이 패가 히브리(아람어)와 로마(라틴)와 헬라(그리이스)말로 기록되었다고 합니다(20절). 즉 예수님의 죽음은 어느 민족 차별 없이, 이 온 세상을 위하여 돌아가신 메시아로, 만왕의 왕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넷째로, 십자가 형틀 위에 못박히십니다(요 19:23상).
십자가 처형제도는 야만인이나, 미개인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페르시아 제국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중 범죄자의 죽음은 천천히, 고통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로마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Cicero 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잔혹하고 두려운 죽음이 십자가의 죽음이다. 어떤 말로도 표현하거나 형용할 수 없는 죽음이다 "고 하였습니다. 로마 시민들은 상상할 수도 없던 처형 모습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 역사학자인 Josephus 도 "가장 악한 죽음"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형집행자는 십자가 형틀을 땅에 놓고 예수님을 그 위에 얹은 후 양 팔을 거꾸로 돌려 잡은 후 십자가에 걸리게 하고 목이 윗 십자가에 걸리게 한 후, 양 손에 망치를 가지고 힘 주어 못 질을 하고 양 발을 포개어 놓고 다시 못질을 한 후 두 군병이 십자가 형틀을 올려 세운다. 그러면 예수님의 팔은 V 자 모양이 되었다 "고 Jim Bishop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설명합니다.
아주 심한 고통이 손과 팔, 발과 전신으로 퍼지면서 점점 예수님은 정신을 잃어 갑니다. 당시 진통제로쓰이던 쓸개를 탄 포도즙도 마다 하시면서 맨 정신을 유지하려 하셨지만, 피를 많이 쏟아가시면서 점점 온 몸에 마비가 옵니다. 목이 말라 갑니다. 그 고통을 참으시며 아무 말씀하지 않으시던 예수님께서는 일곱 마디의 말씀을 하십니다. 첫번째는 자기를 못박게 하였던 사람들, 특히 종교 지도자들과 형을 집행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두 번째는 같이 처형당하는 행악자 가운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한편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4:43) 고 하셨고, 세째는 오늘 본문 26-27절의 어머니 마리아와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와 "네 어머니라"고 하셨고, 넷째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 즉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하셨고, 다섯째는 자기 자신의 고통을 "내가 목마르다"(요 19:28)고 표현하셨고, 여섯째로는 자신의 독백처럼 "다 이루었다"(요 19:30) 라고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다 완성되었음을 공포하셨고, 마지막으로 다시 아버지 하나님을 향하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마 23:46) 고 하셨습니다.
장장 6시간 동안 십자가 형틀에 매달려 극심한 고통과 씨름하시다가 결국 운명하셨습니다. 십자가의 형벌이 잔인하면 잔인할수록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커다란 진노의 대상이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절대주권 하에, 예수님은 실제 아무 죄가 없으신 분이 스스로 십자가 죽음을 자원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다 이루었다' 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내 주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죄를 위한 희생제물로, 유월절에 피를 흘리고 죽는 그 한 마리의 어린 양으로 묵묵히 죽으셨습니다.
잠깐 이 처절했던 십자가를 한번 묵상해 보십시오. 그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결국 우리로 하여금 죄에 대한 형벌, 심판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오히려 이 세상에서 승리하여 기쁨을 가져다 주기 위하여 당하신 고통이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았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 12:2-3) 고 하셨습니다.
십자가! 어떤 고난과 고통이었습니까? 그것을 옆에서 바라보던 베드로! 주님을 배반하고 통곡하며 회개하던 베드로는 후에 기록하기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않으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 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입었나니"(벧전 2:22-24) 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 때문에 외로우십니까? 인생이 고난과 고통의 연속입니까?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과 그 보혈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평강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도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감사와 찬양을 드리십시오. 바로 앞에 얼마 있지 않아 다가올 영광을 바라보고 의에 대하여 살아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 죽어야 합니다. 또 다시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 2:20-21).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해야 할 십자가는 생각 속의 십자가가 아닙니다. 십자가가 사로잡아야 할 것은 우리의 실제적인 삶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일도 필요하지만, 흐르는 눈물을 씻고 강인함으로 고난과 시련의 십자가를 지고 좋으신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성경의 나타나는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세상과 싸우면서 고난 받는 영웅들이 아니었습니까? 놀라운 것은 그들은 자신들이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당연히 감당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나아갔습니다. 결코 세상을 부러워하거나 세상 앞에 비굴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어떤 영광이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십자가의 고난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백년 전에 살았던 George Bennard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찬송합니다. 우리 모두의 진실한 찬송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갈보리 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 주가 고난을 당한 표라
험한 십자가를 내가 사랑함은 주가 보혈을 흘림일세
주가 예비하신 나의 본향 집에 나를 부르실 그 날까지
험한 십자가를 항상 달게 지고 내가 죽도록 충성하리
최후 승리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얻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298 주일설교 [5/23/10]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한 태일 목사 2010-05-25 1878
297 주일설교 [5/23/10]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한 태일 목사 2010-05-25 1730
296 주일설교 [5/19/10] 수요예배 - 분별력 한 태일 목사 2010-05-21 1909
295 주일설교 [5/16/10] 성경적인 부부관계 한 태일 목사 2010-05-17 2705
294 주일설교 [5/12/10] 수요예배 - 불신앙의 결과 한 태일 목사 2010-05-15 1945
293 주일설교 [5/9/10] 예수님의 어머니 공경 한 태일 목사 2010-05-10 1912
292 주일설교 [5/5/10] 수요예배 - 믿음으로 간절히 부르짖음 한 태일 목사 2010-05-07 2022
291 주일설교 [5/2/10] 정말 거듭나셨습니까? 한태일 목사 2010-05-04 1739
290 주일설교 [4/25/10] 어떤 믿음의 반응을 보이십니까? 한태일 목사 2010-04-29 1926
289 주일설교 [4/21/10] 수요예배 -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 한태일 목사 2010-04-23 1886
288 주일설교 [4/18/10] 얼마나 성전을 사모하십니까? 한태일 목사 2010-04-19 1895
287 주일설교 [4/14/10] 수요예배 - 약속의 땅을 앞에 두고 한태일 목사 2010-04-15 1973
286 주일설교 [4/11/10] 오늘도 기적을 체험합시다 한태일 목사 2010-04-12 1925
285 주일설교 [4/7/10] 수요예배 -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라 한태일 목사 2010-04-09 2631
284 주일설교 [4/4/10] 부활의 믿음으로 사십시오 한태일 목사 2010-04-05 1797
283 주일설교 [4/2/10] 정사기념예배 - 십자가의 고난의 의미를 안다면 한태일 목사 2010-04-03 2042
1,,,6162636465666768697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