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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0-04-12 (월) 22:1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925    
[4/11/10] 오늘도 기적을 체험합시다
오늘도 기적을 체험합시다 (요한복음 2:1-11)

많은 신자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대한 기대를 별로 하지 않고 신앙생활하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초자연적인 하나님을 믿고 사는 우리 성도들은 얼마든지 일상생활에서 초자연적인 기적을 체험하고 살 수 있습니다. 물론 허구를 믿는 맹신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빨간 불에 지나가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라든가, 시험공부를 안해도 A 를 맞을 것이라든가, 수영도 못하면서 물에 빠져도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것이라면서 뛰어드는 것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도 기적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구원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못 믿는데 믿어지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영혼 구원뿐만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변화시킬 수 없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변화시키십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나을 수 없는 병을 낫게 하십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해결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온통 기적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성도는 하나님의 기적을 귀하게 여기고, 기적을 믿고, 또 하나님의 기적대로 될 줄로 믿고 살아갑니다. 삶 자체가 날마다 하나님의 기적을 이루는 삶이라는 것을 깨닫고, 기적을 위하여 기도하고 삽니다. 이것이 세상의 불신자들과 다른 삶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적도 믿지 않습니다. 초자연적인 일들을 우연으로 혹은 운(運)으로 여길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기적을 베푸실 것을 믿고, 기적을 체험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후에, 사흘이 지난 다음 함께 혼인잔치에 참석하시다가 일어난 사건입니다. 나다나엘의 고향이 가나에서(1절) 결혼식이 행해졌는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이 예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신랑 측이 예수님과 가까운 집안이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유대 나라는 신랑 측이 거의 모든 결혼 준비와 그 비용을 댄다고 합니다. 또, 우리나라 결혼식과는 달리 유대인들은 먼저 잔치를 하고 나서 예식을 한다고 합니다. 혼인잔치가 며칠 동안 계속되기도 하는데, 어떤 때는 일주일씩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잔치를 그만두어야 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아마 이 집이 가난해서 포도주를 넉넉히 준비하지 못했던가, 생각보다 손님들이 너무 많이 와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신랑과 그 가족으로서는 너무 당황스럽고, 수치스럽고, 난처한 지경에 빠졌습니다. 포도주는 유대 나라에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귀한 음료수였다고 합니다. 성경에도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시 104:15)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잔치’ 하면 포도주를 연상했다고 합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 ‘잔치’ 하면 식혜나 수정과가 귀한 음료수이듯이 말입니다. 물론 오늘날 상점에서 파는 포도주와는 많이 다릅니다.
그러니 참으로 곤경에 처한 주인네를 생각하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합니다(3절). 아마도 마리아는 30여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 예수님을 잉태했을 때의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특별한 증거들을 잊지 않고 있었고, 예수님께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보여주신 남다른 일들을 마음에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요청에 대하여 예수님의 대답은 전혀 뜻 밖의 말씀으로 거절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4절)라고 말입니다. 우선 모친 마리아를 ‘여자여(Madam)’라고 불렀습니다. 이 뜻은 이제부터는 예수님과 마리아의 사이는 더 이상 어머니와 아들과의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한 집안에서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고 살던 사생애(private life)가 끝났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마리아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의 공생애(public life)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그녀에게 상기시켜 주시기 위하여 ‘여자여’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마리아도 구원을 받아야 할 죄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내 때가 이르지 못하였다’는 뜻은 사람들 앞에서 기적을 행할 때가 아직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실상 마리아의 요청을 냉정하게 거절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포도주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언제 많은 포도를 따 와서 발로 밟아 만듭니까? 그러니까 지금은 하나님의 기적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직 기적을 행할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은 그렇게 하시고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께서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왜, 예수님 마음이 바뀌게 되었을까요?
이유는 마리아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말씀을 하시던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하인들에게 지금부터 주님께서 무엇을 시키시든지 그대로 하라고만 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물론 마리아도 인간인지라 예수님이 누구신가 때때로 잊고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예수님께서 ‘여자여’라고 자기를 부를 때에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 같습니다. 곧 예수님은 자신의 아들이 아니고, 믿어야 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믿음을 회복한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곁에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자기 아들이라면 심부름을 시킬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참 하나님이시라면 이제는 이 분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능력을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능치 못한 일이 없음을 말입니다.
이렇게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모자라는 것이 주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그것을 믿음으로 주님께 가지고 나왔을 때에 얼마든지 주님과 상관이 있는 일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도 믿음으로 주님께 가지고 나오면 주님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마리아는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더라도 그대로 하라고 명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순종하기 어려운 일을 주님께서 시키셨습니다. 결례식을 위하여 손발을 씻는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워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는 것이었습니다(6-7절). 놀라운 것은 하인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 20~30 gallon의 항아리에 물을 채워가지고 그 물을 연회장에 갖다 주었습니다(8절). 그렇게 했더니 그 물이 극상품 포도주로 변했습니다(9-10절). 창조주의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결례식에 사용하는 항아리의 물은 사람들의 겉만 씻을 뿐이었고, 손과 발이 깨끗하진 것을 보며 만족할 뿐이었지만 겉만 씻는다고 해서 사람의 속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손발을 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기적이 일어났고, 낭패를 겪을 뻔 했던 혼인잔치는 더 풍성해졌습니다. 최고로 좋은 포도주로 손님들이 즐거워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와 마귀가 주장하는 세상 나라의 차이입니다. 세상 나라는 좋은 것으로 시작해서 나쁜 것으로 끝이 납니다. 반면에 하나님 나라는 좋은 것으로 시작해서 더 좋은 것으로 끝이 난다는 사실입니다. 죄와 관련된 것은 얼른 보기에 좋게 보입니다. 하지만 죄는 언제나 마지막에 가장 나쁜 것을 남겨둡니다. 마귀는 늘 처음에는 좋게, 잘 되게 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점점 투자를 하게 합니다. 시간도, 돈도, 인생도 말입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다 챙겨버립니다. 삼켜버립니다. 그래서 도박에 망친 인생, 마약에 망친 인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술에 대한 예를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은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잠 23:29-32)라고 하였습니다.
혹시나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죄 가운데 빠져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의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비참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얼른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리하면 성령께서 새 사람이 되게 하시고, 변화를 받게 하셔서 우리를 극상품의 포도주와 같은 인생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 변한 분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주님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요 10:10).
지금 하나님과 동행하고 계십니까? 어려운 위치에 놓였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그 능력을 구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미래는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더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좋은 것들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기적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일으키셨으나, 하인들의 순종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항아리에 물을 뜬 사람들이 하인들이었고, 연회장에 갖다 준 사람들도 하인들이었습니다.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잔치를 돕는 일꾼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냥 말씀만 하신 것이었는데, 그 하인들이 순종하였더니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데 기적이 일어나는 것 아닙니다. 기적을 체험하기 위하여서는 믿음의 순종이 필요합니다. 헌신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사과 나무 아래서 가만히 사과가 떨어지기 바라는 것은 성도의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의 순종이 있어야, 충성이 있어야 그것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에도 무덤의 돌을 옮기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11장). 오병이어의 기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런 순종의 행동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적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이해하지 못해도, 나는 못마땅해도 순종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마지막 1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기적(혹은 이적, miracle)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표적(sig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기적이 예수님이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내는 표시라는 뜻입니다. 숨은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다. 즉 이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제자들이 그를 더욱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려면 그것이 표적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 개인적인 유익을 위한 기적이 아니라, 기적을 통하여 정말 하나님께서 오늘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심을 주위 사람들에게 증거가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정말 구세주이시며, 주가 되심이 증거되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교지에서 기적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기적이 그런 것이 아니라서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는 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의 다른 죽은 신들과 달리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신 인격체이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늘 말씀을 하시며, 또 우리가 무슨 말을 하면 반응을 보이신다는 뜻입니다. 의사소통이 된다는 뜻입니다. 마치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가서 사정을 말하면 그 사람이 우리를 들어주고, 그 사람으로부터 반응으로 어떤 말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을 인격체라고 합니다.
이 진리를 알고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간절하게 부르짖고, 살려달라고 외치게 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귀중히 여기십니다. 처음에 잘 들어주시지 않는 것 같아도 또 간구하는 것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오늘도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붙들림 바 된 사람, 믿음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만약 마리아가 예수님이 자신의 요청을 거절함을 듣고 포기했더라면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겠습니까? 당연히 없었지요.
그러므로 교회는 구경하러 오는 곳이 아닙니다. 놀러 오는 곳이 아닙니다. 친구 만나러 오는 곳이 아닙니다. 사업하기 위하여 오는 곳이 아닙니다. 절간처럼 와서 묵상하며 도를 닦는 곳도 아닙니다. 교회는 인간의 힘으로 변화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와서 변화를 받아 돌아가는 곳입니다. 마음이 괴롭던 사람들이 와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돌아가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임재하는 곳으로 누구든지 오면 기적을 체험하는 곳입니다. 병든 자가 오면 낫게 되고, 안 되던 가정이 오면 잘 되게 되고, 불순종하던 자녀가 순종하는 자녀로 변화 받고 돌아가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초청하고, 성령님의 역사를 기대하면서 간절히 구하며, 주시는 말씀대로 순종하면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적을 체험하고자 하는 기대를 가지고 교회에 오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회개함으로 우리 안에 그 어떤 죄도 내어 버리고, 대신 성령이 역사하도록 나 자신을 내려놓고, 믿음으로 우리 가정 가운데 역사하도록 주님께 의탁하고, 또 믿음으로 우리 교회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께 의탁하고, 우리가 걸어가는 순간 순간마다 우리 발걸음 가운데 예수님과 동행함으로 말미암아,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함으로 기적을 맛보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정에, 우리의 자녀 문제에, 우리의 학교 생활에, 우리의 사업체에, 우리의 직장 생활에, 우리의 결혼 문제에, 그 어떤 문제에도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해주세요. 그대로 살겠습니다’라고 하며 순종하면,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주님께서 돕는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의 새성전 공사는 정말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면 완공이 불가능한 역사입니다. 인간적인 계산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그 기적이 조금씩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완공이 되려면 여러분의 기도가 더욱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순종이 너무도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헌신과 희생이 너무나도 필요합니다. 아니면 올해 안에 완공이 되는 기적을 보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저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말미암아 반드시 올해 안에 완공되어 마치 오늘 본문의 기적처럼 하나님의 큰 영광이 나타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표적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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