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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9-07-13 (월) 10:2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079    
[7/12/09] 예수님의 영향을 끼치는 사람
예수님의 영향을 끼치는 삶 (사도행전 24:1-9)
여러분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삽니까? 만약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예수님의 영향을 끼치는 삶이어야 합니다. 좀 안 좋은 표현을 사용하자면 예수님을 전염시키는 사람이 그리스도인(Contagious Christian), 성도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의 그대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그 닮는 것이 주위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그 빛을 받아 예수님의 영향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을 전염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마치 어떤 전염병에 걸린 사람과 접촉을 통하여 그 병을 옮듯이 말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그러한 표현이 사도 바울을 향하여 쓰여졌습니다. 문맥을 살펴보면 바울은 제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선교 보고도 할 겸, 기근에 시달린 예루살렘에 있는 동족들에게 구제헌금을 전달할 겸, 또한 유대인들도 전도할 겸 예루살렘 성전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러나 바로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체포를 당하였습니다(행 21:30). 유대인의 공회에서 아나니아 대제사장을 비롯하여 지도자들이 여론몰이 식으로 바울을 이단으로 몰려고 했었는데, 이 자리에서 바울이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는다’(23:6) 라는 증언에서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말이 불씨가 되어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일이 실패하자, 결사대를 조직하여 바울의 암살을 기도하였습니다(23:12이하). 처음 체포 당할 때도 제대로 재판을 받기도 전에 죽을 뻔 하였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천부장 루시아의 도움을 받아 구출되어져 목숨을 건진 적이 있었고(21:33), 이번에도 바울의 조카로 인하여 암살작전이 탄로 나서 천부장에 의하여 구출되어(23:16이하) 총독에게 재판 받게 하려고 가이사랴로 압송이 되었습니다(23:33). 아무리 악한 자들이 믿는 자들을 해치려고 해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머리카락 하나도 상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있을 때에는 우리가 하나님을 등에 업고 싸우는 것과 같기 때문에 어떤 궤계로도 하나님의 종을 이길 수 없습니다.
천부장 루시아의 편지와 함께 바울을 넘겨 받은 총독 벨릭스는 바울에 대한 예비 심문을 마친 뒤 그를 고소하는 사람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바울은 약 닷새 동안 구금되어 있다가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함께 도착하자 다시 재판이 시작된 것입니다(24:1). 그런데 그들만 온 것이 아니라 법정 변론에 능통한 더둘로라는 변사, 즉 변호사를 특별 고용해서 온 것입니다. 그 동안 바울을 없애려고 했는데 몇 번씩 실패를 했으니 얼마나 독이 올랐겠습니다.
이 더둘로는 전문가답게 먼저 로마 총독 벨릭스에게 귀가 간지러울 정도로 엄청나게 아첨하는 말을 쏟아냅니다.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으로 당신의 선견을 인하여 여러 가지로 개량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감사무지하옵나이다”(3절)! 사실과 너무 다른 아첨이었습니다. 당시 벨릭스 총독이 통치할 때에 이스라엘을 비롯한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폭동과 무질서가 판을 쳤기에 태평함은커녕 이를 제압하려는 그의 난폭한 시도는 사람들을 더욱 자극시키기만 했을 뿐이었습니다. 또한 아나니아 이전의 대제사장을 죽인 사람이 바로 이 벨릭스 총독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당시 유대인들이 지금 벨릭스 총독 앞 법정에서 하는 더둘로의 이 말을 들었다면 그들 대부분은 아연실색 했을 것입니다. 전혀 태평스러운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각하로 호칭될 자격도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그에게 감사할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을 죽이려는 생각에 더둘로의 마음에도 없는 입 발린 말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거짓말을, 거짓 증언을 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봅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냥 거짓말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감동과 확신을 주기 위해 눈물을 흘려가며 가장 진실한 모습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어느 한 사람의 말만 들어서 진위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양쪽의 말을 다 들어보아야 하고, 또 다 들어보아도 정확한 판단이 서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분별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 변호사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증인으로 보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변호사는 있는 말 없는 말 다 끄집어내어 자기 주장을 가지고 상대방을 이겨야 하지만, 증인은 단지 자신이 본 것과 알고 있는 것만을 말하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 벨릭스 총독의 법정에서 더둘로는 변호사이지만, 바울은 피고소인이자 증인인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차이입니다.

이어서 더둘로의 바울을 고소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그가 좋지 않는 예이지만 그리스도인, 성도의 본질에 대하여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염병”(pest)이라는 표현으로 천하에 퍼진 유대인들을 다 소요케 한다고 고소합니다(5절). 우리가 어렸을 때에 욕 중에서 나쁜 욕 중에 하나가 ‘염병할 놈’이라는 욕이었습니다. 즉 염병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전염병을 뜻합니다. 더둘로는 원래 유대 사회는 건강한데, 이 바울이 예수라는 병균을 가진 전염병을 퍼뜨려서 그 영향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는 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사실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 성령이 강림하신 후로부터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영향은 미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변화를 받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전에 죄인 줄 모르고 행했던 것들을 이제 예수를 믿고 난 후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죄가 되는 것은 일체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본 그들의 주인이나 웃사람들, 유대교 지도자들은 위협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유대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에는 무엇이든지 시키기만 하면 다 되었는데, 이제는 죄가 되는 일은 하지를 않습니다. 때려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믿음을 염병이라고 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전염병처럼 번져서 온 나라를 소동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둘째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는 고소입니다. 나사렛은 예수님 자신에게 적용되었던 아호로서(행 2:22), 신약성경에서 단지 여기서만 그리스도인을 묘사합니다. 왜 더둘로가 ‘이 도’ 혹은 ‘그리스도인들’이라는 말 대신 “나사렛 이단”이라는 말을 사용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아마 그는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는 옛 말을 깨우치기 위하여 사용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또한 이들 집단이 로마 제국이 인정하는 합법적 유대교 지도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나사렛이라는 한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는 불법적 집단임을 부각시키려고 “나사렛 이단”이라고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이단(sect)이라는 말은 오늘날 이단의 뜻이 아니라 한 종교적 분파를 뜻하는 용어였습니다. 셋째는, 성전을 더럽히는 자라는 고소입니다(6절). 이는 바울이 전에 고소 당한 바 이방인들을 성전에 들였다는 것입니다(21:28). 그러나 바울이 결코 이방인을 성전에 들인 것이 아니라, 성전 바깥 이방인의 뜰에 인도한 것일 뿐이었습니다. 하여튼 그들은 바울이 대제사장을 비롯한 성전의 유대교 지도자들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자라는 고소였습니다.
이것은 결국 권위를 어디에 두고 복종하느냐는 문제입니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는 로마 천주교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히 이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놓고 볼 때에는 로마 천주교가 틀렸고, 마르틴 루터가 맞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이나, 스데반 집사나, 지금 바울의 재판도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대교의 전통에서 볼 때에는 이들이 유대교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이지만, 성경에서 보면 바른 길에서 벗어난 유대교 사람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영향을 끼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마찬가지로 우리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바울이 더둘로에게 들었던 ‘염병’이라는 말과 같이 우리 주위에 예수님의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습니다(마 5:14).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추인다고 했습니다. 빛은 전달될 수 밖에 없습니다. 깜깜할수록 아주 작은 빛도 빛나게 되어 있습니다. 빛을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두움이 빛을 만나면 소동이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였습니다(마 5:13). 소금이 닿는 곳에 짠 맛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맛을 잃어버리면 이미 소금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소금 맛, 그 짠 맛이 전달되게 되어 있습니다. 주위가 썩어져 가는 부패를 막기도 하고, 맛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더둘로는 전염이 되는 염병이라는 표현을 썼을 뿐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는 나사렛과 같은 촌에서 무슨 그런 훌륭한 메시아가 날 수 있을까 의심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겸비하게 나사렛에서 자라 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변했습니다. 그래서 나사렛 이단이라고 더둘로는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만나 함께 교제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차츰 예수님을 닮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참 빛이신 주님의 빛을 나타낼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다가 보면, 사귀다 보면 닮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리 삶에 최종적인, 최고의 권위로 놓고 살기에 어쩌면 때로는 전통에 어긋날 수도 있습니다. 성전을 어지럽게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진실로 예수님을 만나서 믿게 된 사람들이 예수님의 영향을 받고 변화를 받았듯이, 주위에 예수님의 영향을 끼치면서 변화를 가져오게 합니다. 그래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고 한 것입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 때문에 그 영향이 내 가정이 미쳐서 온 가족이 구원을 체험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가정 뿐만 아닙니다. 여러분이 속한 어떤 모임, 공동체에도 주님의 영향이 미쳐서 변화가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아무 것도, 아무 사람도 나로 인하여 예수님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아무 변화도 없다, 전염되지 않는다’라고 한다면, 여러분이 제대로 예수님을 만난 그리스도인인지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전염병에 걸린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접촉함으로 전염시킬 수 있지, 내가 병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전염이 가능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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