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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9-08-20 (목) 20:4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038    
[8/19/09] 수요예배 - 전도서 강해 4
죽음은 다 일반이로되 (전도서 2:12-17)
삶의 허무를 이야기하고 있던 솔로몬은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던, 어리석은 사람이던 죽는 것은 다 일반이더라는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죽음은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는 과정이기에 죽음이 허무하지도, 두렵지도 않습니다.
허무한 삶을 사는 이방인들이 솔로몬을 찾아와 지혜를 구할 때에 그들에게 죽음도 허무함을 전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있는 자이건 어리석은 자이건 상관없이 죽음은 다 똑같더라는 말입니다(16절).

잠간 여기서 솔로몬에게 말하는 이러한 지혜에 대하여 살펴보기 원합니다. 원래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 말씀으로 살려고 힘쓰는 가운데 몸으로 체득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은 절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과 세상 현실 사이에는 너무나 엄청난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악한 세상에서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요셉의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그래서 성경은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약 1:5).
성도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다가 핍박을 받기도 하며, 사람들의 눈에 이 세상 인생에서 실패를 맞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로 하나님 말씀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악한 사탄의 궤계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따르면서 승리하게 됩니다.
솔로몬의 경우에는 이런 고생이 없이 바로 기도의 응답으로 지혜가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고, 엄청난 부도 모았습니다. 그는 이것을 자신의 ‘분복’ 이라고 생각했습니다(10절). 도둑질 하지 않고 부지런히 땀을 흘려 부자가 되었다면 그것을 자신의 분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너무 쉽게 지혜를 얻었습니다. 요셉처럼 인생 밑바닥에서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며 얻은 지혜는 겸손하고 온유합니다. 또 인간의 지혜를 믿지 않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지혜 자체를 믿고 온갖 일을 다했습니다. 덕분에 엄청난 돈도 벌었고, 많은 연구도 하고, 세상의 것들을 두루 추구해 보았습니다. 문제는 죄가 조금씩 틈타는 것을 몰랐습니다. 죄에 빠지지 않는 것이 참된 지혜요, 하나님의 지혜이지, 한번 죄에 빠진 후에는 그 어떤 지혜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솔로몬은 자기 머리를 너무 믿은 나머지 절제하지 못하고 일을 벌였습니다. 주위 나라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다는 구실 하에 이방 나라들의 공주들을 부인으로, 첩으로 맞아 들였습니다. 그러다가 올무에 걸려들고 만 것입니다.
남의 권면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누가 솔로몬을 말로 이기겠습니까? 그랬던 그가 인생의 말년에 하는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의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꼬 행한 지 오랜 일일 뿐이리라”(12절)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지혜는 일종의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구가 아무리 좋아도 어떤 사람의 손에 잡히느냐에 따라서 좋게 사용될 수도 있고 나쁘게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그는 한 사람만 똑똑해서는 안되겠다고 말합니다.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이 왕궁에 같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솔로문이 똑똑하면 무엇합니까? 다른 신하들이 알아듣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왕궁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알아듣고 왕의 말을 따라 행하여야 지혜이지, 한 사람이 혼자 잘났다고 떠들어 대는 것은 지혜가 아니더라는 말입니다. 실컷 이야기를 했는데 신하들은 지금까지 해 오던 대로만 일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지혜로운 말을 해도 다른 사람이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많이 하면 사람들은 혼란만 겪고, 결과는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하고 맙니다. 아이디어만 새롭고 사람들 자체는 여전히 구식이라면 그저 옛날이 낫다는 말만 나올 뿐입니다. 즉 진짜 지혜와 가짜 지혜의 차이는 상대방에게 공감을 갖게 하고, 동참하게 하는 것입니다.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말을 잘해서 그런 것 같다가도 혼자 생각해 보니 아닌 것 같다면, 그것은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 말재간이 좋을 뿐입니다.
그래서 가정이나 교회에서 성경적인 공감대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각이 다른 상태에서 아무리 많은 일을 벌여도 결국 모래성처럼 주저앉게 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참된 지혜에 ‘기도’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정말 지혜있는 사람은 자기 머리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계획은 인간이 해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암살롬에게 쫓길 때에 암살롬 진영의 아히도벨 같은 사람은 얼마나 지혜가 있었습니다. 모략가였습니다. 그는 압살롬에게 당장 군사 일만 이천을 주어 다윗을 추격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삼하 17:1-3). 그러면 다윗만 죽이고 백성들은 데려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히도벨의 모략이 성공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긍휼을 베푸셔서,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모략을 택하지 않고 후새의 모략을 택하게 하였습니다. 만약 아히도벨의 모략대로 되었다면 그날 밤에 다윗은 죽었을 것입니다. 그날 밤이 다윗에게는 최고의 고비였습니다.
인간의 모략만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놀라운 지혜라도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하나님의 간섭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지혜있는 자는 반드시 기도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지혜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순결, 정직이라는 것입니다. 순결하지 못한, 정직하지 못한 지혜는 위험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둘기 같이 순결하고 뱀 같이 지혜로우라고 하였습니다(마 10:16).
또 지혜는 믿음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지혜는 결국 자기 머리만 굴리다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아히도벨은 자기 모략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보고 고향에 내려가서 목을 메고 자살해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지혜는 남을 살리는 대신 망하게 하고 결국 자신도 죽게 만듭니다.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압 여자와 죄짓게 만드는 데 지혜를 발휘하다 결국 여호수아의 칼에 죽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지혜는 한순간 뛰어날지 몰라도 지속적으로 성공할 수 없고 실패하게 됩니다.
순결한 지혜, 정직한 지혜, 믿음이 함께 하는 지혜는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자신의 지혜를 굉장히 후회하게 됩니다. “심중에 이르기를 우매자의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가 어찌하여 지혜가 더하였던고 이에 내기 심중에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15절)! 후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혜 자체를 너무 믿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지혜에 있어서는 아버지 다윗을 앞섰지만 우직하지 못하고 가벼웠습니다. 신실성에 있어서는 다윗보다 떨어졌습니다. 그는 자기 지혜를 너무 믿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지혜자나 우매자나 영원토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다 잊어버린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16절) 자기 지혜를 믿고 애를 써 보았지만, 결국 죽음이 기다라고 있더라는 말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다 가지고 갈 줄 알았지만, 어느 누구도 무덤에 가지고 가지는 못하더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난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수고는 결국 죽음 앞에서 바람 잡는 것같이 허망하다고 합니다.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한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다 헛되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이로다”(17절)!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믿음이 없는 이방인들과는 달리 우리들은 죽음 앞에서 새롭게 전개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합니다. 비록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이며, 우리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마지막 종말에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눈과 눈을 맞대고 주님을 대하며, 서로를 만나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그래서 이 날을 소망하며 ‘마라나타’ 즉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계 22:20) 라고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날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기도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순결한 지혜, 정직한 지혜, 믿음과 함께 하는 지혜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하루 하루가 의미 있고, 목적이 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는, 허망한 삶이 아닐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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