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127,449
오늘방문 : 10
어제방문 : 10789
전체글등록 : 3,866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1-04-29 (목) 08:05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868    
여러가지 시험(시련)을 만나거든 (약 1:1-8)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끝까지 달려갈 길을 잘 가려면 때때로 당하는 시련을 잘 통과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꾸 잊어버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사탄, 마귀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보여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도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로 영적인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시련(trial)은 우리 편에서 보면 시험(test)이 됩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시험을 쳐보지 않은 학생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사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시험을 치게 하는 것은 학생의 실력이 얼마나 되는가, 그 능력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잘 준비된 학생은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됩니다. 시험이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때때로 다가오는 시련(시험)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음이 있는가,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이 세상보다는 주님을 얼마나 더 사랑하고 있는가’ 보여줄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달아보시는 기회입니다. 물론 아무리 시험준비를 많이 한 학생도 학교에서 시험을 칠 때에는 조금은 떨리게 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도 인생의 시련이 다가올 때 떨리게 되어 있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시험을 잘 친 학생이 그 결과를 기다리는 것만큼 흥분되는 것이 없듯이 우리가 잘 통과할 경우는 시련 후에 다가오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시련이 닥칠 때에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한 그 과정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그릇이 되는 비결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시련”(3절)이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이복동생이자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을 지낸 사도 야고보가 기록한 서신입니다. 아마도 신약성경 가운데 가장 먼저, 주후 45년경을 전후로 쓰여진 서신으로 여깁니다. 그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나(요 7:5)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고전 15:7). 바울은 그를 초대교회 기둥과 같이 여겼습니다(갈 2:9). 그는 로마제국의 핍박이 극심할 때 도망 다니며, 먹을 것, 입을 것, 거할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던 디아스포라 12지파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위로하며, 믿음과 행위의 일치를 강조하며 이 서신을 썼습니다(1절).
   먼저 1절에서 안부 인사를 한 뒤 시련을 만난 디아스포라 성도들에게 야고보 사도는 성령의 인도로 권면합니다.
   첫째로, 시련이 닥칠 때 기쁘게 여기라고 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2절)고 하였습니다. 아니 어떻게 시련이 다가와 고통 중에 있는데 기뻐하라는 말입니까? 물론 위선적으로 고통과 슬픔을 감추면서 괜찮은 척, 행복한 척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믿음의 시련이니, 믿음으로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회피하지 말고 믿음으로 정면돌파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나머지 마치 기쁨으로 시련을 받아들이는 것 같은 모습으로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니 이 시련 다음에 다가올 결과를 기대하면서 기쁘게 여기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happiness)과 2절의 기쁨(joy)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행복은 환경이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기쁨은 환경과 관계없는 내적인 평안과 즐거움을 뜻합니다. 이 세상에서 행복하다는 사람에게 반드시 그런 기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쁨은 단순한 감정(feeling)이 아닙니다. 엄청난 큰 시련을 당하여도 그 시련을 기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이유는 믿음으로 감당하면 큰 시련 후에 있을 좋은 결과를 알기 때문입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3-4절)고 하였습니다. 시련을 통하여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온전한, 성숙한 성도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빚어가시려고, 만드시려고 허락하신 시련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실 때(요 17장) 절대로 세상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에 속하여 살아가는 그들을 거룩하게 해달라고, 지켜달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셨습니다. 시련의 과정을 통하여 부족함이 없는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련을 기쁘게 여길 수 있습니다.

   둘째는, 시련의 과정을 잘 견디며 인내하라고 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4절)고 하였습니다. 시련의 과정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견디라는 말씀입니다. 중도에서 포기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결과 못지 않게 과정도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 뜻을 보여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시험 그 자체를 없애주시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이기도록 인내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우리는 그 과정을 그냥 지나쳐 버리려고 합니다. 싫어합니다.
   여기 “인내(vu`pomonh, perseverance)”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여러분들이 일반적으로 아는 참고 견디어 내는 능력을 말하며, 또 다른 하나는 절제(discipline)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나 자신을 쳐서 주님의 뜻에 복종시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란은 인내를”만들어 낸다고 하였습니다(롬 5:3). 가만히 살펴보면 인내심이 있는 사람들은 융통성이, 관대함이 있습니다. 이해심이 많습니다. 반대로 꽉 막힌 사람, 이해심이 부족한 사람은 참지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관용을 배워야 합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집에서, 교회에서든 어느 곳에서든지 누가 여러분에게 시비를 걸어와도 관대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내 계획대로 잘 되지 않는다고 화를 내거나 당황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잠시 실망하더라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이런 것은 시련을 통하여 배워지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감사함으로 기도할 수 있을 때 인내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련을 잘 통과한 자는 하나님의 때(cairoj)와 우리의 때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급한 것 같은데 하나님은 전혀 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본적인 자세는 때를 나에게 맞추지 않고 하나님께 맞추는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을 앞서지 않는 것입니다.

   끝으로, 믿음으로 지혜를 구하라고 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5절)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시련을 당할 때에 현명한 결정을 내려서 어려운 시간들을 잘 통과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혜가 필요하지요.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세상 지혜가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지혜입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 3:17-18)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의 특징들과 결과를 열거하였습니다.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 선한 열매가 가득한 것이며, 편견에 치우치지 않고, 거짓이 없으며, 화평으로 의로운 열매를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우리 자신의 지혜로 해보다가 안되면 그제서야 하나님께 돌아가지요. 처음부터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였다면 이미 시련을 잘 헤쳐 나갔을텐데 말입니다.  
   그리고 지혜를 구할 때 믿음으로 구하라고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6-8절)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련을 그저 피해가려고만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저는 이 시험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다른 시험을 주세요’라고 하지 말고, ‘믿음으로 지혜를 주셔서 이번 시험을 잘 쳐서 좋은 결과를 보게 해주세요.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시련을 피해가도록 도와달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시련을 잘 통과하도록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고 계속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피해가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심히 출렁거립니다. 많이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여러분! 시련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면 계속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자꾸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났을까 하면서 하나님께 원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8절 말씀대로 두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의 눈을 주님께 고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시련을 허락하셨으니 분명히 그 뜻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우리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확실히 안다면 주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시련에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 12:2-3)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하실 것을 아셨습니다. 정말 참기 힘든 고통을 아셨기에 “이 (고난의)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막 14:36)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통의 십자가에 눈을 맞추지 않고,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실 것을 내다보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시련 자체보다는 시련 후에 있어질 결과에 소망을 두고 주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가 아니라 한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인생길에서 만난 시험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시련이 오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는 줄 알고 감사하며 주님께 더욱 가까이 갑니다.
혹 어떤 분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만난 시련이 나를 온전하게, 성숙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인지,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시험인지 어떻게 압니까?’ 라고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분명히 구별해야 할 것은 오늘 본문의 시련과 내적인 유혹(temptation)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약 1:13-14)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여러분을 시험하여 죄에 빠지도록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늘 본문의 시련은 우리가 당하는 여러가지 외적인 어려움을 말합니다. 물론 내가 유혹에 빠져서 외적인 어려움이 올 수도 있습니다. 헌데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생겨서 심적으로, 육적으로 고통을 받는 경우입니다. 마치 욥이 당한 시련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시련입니다.
   이 경우에 우리가 어떻게 잘 이겨내야 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우선 시련이 오면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시련 후에 다가올 좋은 결과를 기대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더욱 성숙한 성도로 만들어 가심을 믿으며, 변화된 모습을 생각하여 마음 깊이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잘 참고 견디라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고, 선한 뜻이 있음을 확신하고 나를 쳐서 주께 복종시키라는 것입니다. 절제하라는 뜻입니다. 또한 시련을 잘 이겨내도록 지혜를 구하되 믿음으로 구하라고 했습니다.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적용할 수 있는 지혜를 의심 없이 구하면 반드시 주신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시련 자체에 눈을 두지 말고, 눈을 주님께 고정시키라고 했습니다. 큰 그림을 보라는 말입니다. ‘왜?’ 라는 질문보다 ‘무엇을?’ 원하시나요 하면서,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주관하고 계심을 깨달아 전폭적으로 신뢰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무슨 일에도, 어떤 경우에도 우리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면, 아니 그 사랑이 더해간다면 반드시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믿음의 시련”입니다.  
여러분! 어떤 시련을 맞고 있습니까? 어쩌면 하나님께서 인생이라는 교실에 여러가지 수업 시간을 만들고 각 시험을 치르게 하시는지 모릅니다.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이 아닙니다. 얼마나 좋은 성적을 받는지 보기 위하심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성적표를 받기 원하십니까? 이미 영적으로 풍성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을 주셨습니다. 시험을 잘 통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생명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 1:12)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믿음의 시련을 잘 통과하여 보다 성숙하고 온전한 성도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께 칭찬듣기를 원합니다. 욥처럼 배가의 축복을 받기 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177 수요설교 우리의 포도원 (아 2:10-17) 관리자 2021-06-26 783
1176 주일설교 내 아들아 나의 명령을 지키라 (잠 3:1-10) 한태일 목사 2021-06-20 807
1175 수요설교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 (약 2:1-7) 한태일 목사 2021-06-17 769
1174 주일설교 자기를 낮추는 자 (눅 18:9-14) 한태일 목사 2021-06-13 831
1173 주일설교 재림을 기다리며 믿음으로 끈질기게 기도하라 (눅 18:1-8) 한태일 목사 2021-06-06 956
1172 수요설교 참된 경건은 믿음의 도를 행하는 것 (약 1:22-27) 한태일 목사 2021-06-03 782
1171 주일설교 앞으로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 (눅 17:22-37) 한태일 목사 2021-05-30 985
1170 수요설교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 (약 4:13-17) 관리자 2021-05-29 775
1169 주일설교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 5:18-21) 한태일 목사 2021-05-23 971
1168 수요설교 마음에 심긴 도 (약 1:16-21) 한태일 목사 2021-05-21 778
1167 주일설교 우리의 가족들은 화목합니까? (엡 2:11-18) 한태일 목사 2021-05-16 941
1166 수요설교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도다 (약 1:9-15) 한태일 목사 2021-05-13 880
1165 주일설교 참 믿음의 어머니 (삼상 1:20-28) 한태일 목사 2021-05-09 856
1164 수요설교 은혜의 보좌앞에(히 4:14-16) 관리자 2021-05-07 700
1163 주일설교 이미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 (눅 17:20-21) 한태일 목사 2021-05-02 854
1162 수요설교 여러가지 시험(시련)을 만나거든 (약 1:1-8) 한태일 목사 2021-04-29 868
1,,,1112131415161718192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