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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1-05-13 (목) 05:53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881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도다 (약 1:9-15)


지난 번 1절~8절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시련(trials)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시련이 오면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시련 후에 다가올 좋은 결과를 기대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더욱 성숙한 성도로 만들어 가심을 믿으며, 변화된 모습을 생각하여 기쁘게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잘 참고 견디라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고, 선한 뜻이 있음을 확신하고 나를 쳐서 주께 복종시키라는 것입니다. 또한 시련을 잘 이겨내도록 지혜를 구하되 믿음으로 구하라고 했습니다.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적용할 수 있는 지혜를 의심 없이 구하면 반드시 주신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시련 자체에 눈을 두지 말고, 눈을 주님께 고정시키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에도, 어떤 경우에도 우리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면, 아니 그 사랑이 더해간다면 반드시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오늘은 시험(temptation), 유혹에 대한 말씀입니다. 특히 돈에 대한, 부에 대한 욕심, 유혹의 시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으로부터 자유하고 싶은,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가, 돈이 많은 것이 정말 복일까요? 돈이 많은 사람은 다 행복할까요? 반대로 가난은 저주일까요? 성경은 부에 대하여, 가난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나요? 중요한 것은 가난하거나 부요한 것 자체는 죄도 아니고, 축복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가난과 부를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다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가난한 형제 중에도 돈에 대하여 무서운 사람이 있습니다. 시험에 빠져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자라고 해서 다 나쁘지 않습니다. 부한 형제 중에서도 신실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재물로 인하여 시험에 들 수 있는 믿음의 형제들에게 권면합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찌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9-10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낮은 형제”는 가난한 성도를 말하고, “부한 형제”는 재산이 많은 부자를 가리킵니다. 가난한 성도들이 의기소침해지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기 쉬운데, 그것을 경계하고 하나님께서 불러주시고 자녀가 되게 하신 그 높은 지위를 자랑하라, 영광스럽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기업을 소유하게 됨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13-14)고 하였습니다. 즉 성령님이 그 기업의 보증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가난하다고 조금도 주눅들지 말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귀한 가족이 된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풍성한 삶은 결코 내가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신령한 복을 받은 자로서 얼마든지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 안에서 가난한 자들은 부 외에 다른 소중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사용하십시오. 누리십시오. 풍성한 삶, 부요한 삶의 비결입니다.  
한편, 부자들은 재물을 의지하고 귀중하게 여기려는 유혹을 받기 쉽기에 어쩌면 부한 것 자체가 고난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부는 사라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풀의 꽃으로 비유하였습니다. 부의 영광은 화려하게 피었다가 시들고 마는 들꽃과 비슷하다는 말씀입니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11절)고 하였습니다. 쌓아놓은 재물을 죽어서 가져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고난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낮아짐을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낮은 자와 동일시하며 부를 자랑하기 보다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진정한 보물은 하늘에만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재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물로 오직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8)고 말씀한 것처럼,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는 것입니다. 영적인 지혜를 가지지 못한 채 부를 소유하는 것은 결국 허무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형제들처럼 부자들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허락해주신 영적 특권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좋은 조건에서 얼마나 누리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상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대신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지켰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아름다운 향기를 내었느냐 하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자기보다 잘 사는 사람을 보고, 그들의 선한 일을 보고 부러워하고 배 아파하는 성도는 미성숙한 것입니다. 누가 좋은 조건에서 좋은 일을 못합니까? 좋지 않은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자가 상이 큽니다. 하나님의 칭찬과 상은 사람들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알겠습니까?

그래서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12절)고 하였습니다. 누군가 어려운 가운데 믿음 생활을 했는데 끝까지 잘 참고 이겨냈다면 그 사람이 복 있는 자요,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자입니다. 여기 “복”은 산상수훈에 나오는 팔복과 같은 것입니다. 외적인 환경이나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고 주님 사랑하며, 주님 안에서 누리는 평강과 기쁨을 말합니다. 물론 시험 자체가 복이 아닙니다. 그러나 시험을 참아내었다면 그것은 복입니다. 주님이 옳다고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면류관”은 마라톤 운동경기 등에서 이기는 자에게 주는 화환입니다. 그러니까 가난하던 부하던 주님 사랑하며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잘 참아낸 자들에게 예비된 상급이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만약 부한 형제가 가난한 형제보다 선한 일을 좀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사실 주님의 눈에는 보잘것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부로 자기 가족과 자신을 위하여 쓴 것에 비하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한 것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니까? 한번은 예수님께서 가난한 과부가 자기 재산을 다 바치는 것을 보고 칭찬하신 적이 있습니다(눅 21:1-4; 막 12:41-44). 겨우 동전 두 닢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부한 형제가 주님에게 칭찬을 받으려면 얼마나 바쳐야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부자가 주님에게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으며 면류관을 받으려면 여간 어렵지 않겠지요. 그렇게 부자가 아닌 것을 감사하십시오. 우리 주님은 다 아십니다.

이어서 야고보 사도는 시험이 오는 것이 누구의 책임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13절)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시험이 오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여 죄에 빠지게 유혹을 한다고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달아보시려고 시험, 시련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창 22:1).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그 시험, 시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혹을 말합니다. 가난하거나 부하여서 오는 시험, 유혹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난이나 부로 우리를 시험하지 않습니다. 서론에도 언급했지만 가난도 부도 그 자체가 시험이나 죄가 아닙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 유혹을 받아 죄악에 빠지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가난하던 부하던 어떻게 사느냐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책임입니다. 죄악에 빠지는 책임이 하나님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13절은 두 가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유혹의 덜미를 잡을 수 있는 그런 악한 성향이나 연약함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완전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에게 유혹의 손이 미칠 수 없습니다. 악은 하나님을 몹시 거슬리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하여 친히 악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과 악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유혹에 빠져서 죄를 짓는 것을 하나님에게 책임을 돌리지 마십시오. 우리의 책임입니다.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것은 자기 욕심입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14-15절)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서 죄가 어떻게 시작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끌려 미혹된다”는 말은 낚시에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숨어있는 물고기를 끌어내어 맛있어 보이는 미끼로 유인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우리의 욕심 때문에 물지 말아야 할 것을 물어버리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죄가 계속되어 장성하게 되면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물었던 것을 계속 물고 있으면 결국 죽게 됩니다.
실제로 죄는 사람의 마음이 죄악된 행동을 하기로 결정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를 계속 허용하면 그 결과는 사망입니다.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한 인격체가 완전히 망가지는 두려운 죽음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욕심을 절제해야, 눈에 보이는 맛있는 미끼에 유혹되지 말아야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유혹 자체야 누구나 받습니다. 그러나 어떤 고기는 미끼를 물지 않듯이, 어떤 사람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유혹이 좋다고 생각하고 끌려 미혹이 되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탄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유혹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안에 있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욕심을 따라가면 죄를 짓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한계를 넘어서 가지거나 누리려고 하지 마십시오. 물론 아예 금욕주의자처럼 살라는 것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만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만 가지는 것입니다. 감사하면서 그것만으로 자족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선한 갈망마저 버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용하려고 열심히 일하는 것은 너무 보기에 좋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묻고, 가르쳐 주시는 대로 열심히 노력하여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런 분들의 삶은 역동적입니다. 눈이 빛나고 생기가 넘칩니다. 사는 목적이, 일하는 목적이 너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은사를, 재능을 주십니다.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십니다. 그리고 열심히 선한 일을 위하여 달리라고 합니다. 나중에 평가하실 때에는 우리에게 허락한 것에 맞게 하십니다. 많이 준 사람들에게는 많은 것을 요구하시고, 적게 준 사람들에게는 적게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서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됩니다.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하나님이 왜 시험하느냐고 하면 곤란합니다. 자신의 형편과 처지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면서 열심히 달리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라고 생각되면 더 열심히 하십시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이 주는 상을 받아야지요. 열악한 형편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섬기며 선한 열매를 맺은 사람이 가장 큰 상을 받을 것입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 6:9)고 하였습니다. 욕심을 경계하십시오. 이기적인 욕망에 넘어가면 죄를 짓게 됩니다. 사탄 마귀의 미끼를 물지 마십시오. 실수로 잠깐 물었다면 금방 놓으십시오. 내려 놓으십시오. 그래야 삽니다. 과거에 욕심에 끌려 미혹되어 죄를 짓고 어려움 당한 적이 다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오히려 주님을 더욱 사랑하며, 하나님의 일에 욕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선한 일에 적극적으로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좀 힘들지만, 그 때에 놀라운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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