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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3-04-15 (월) 10:31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55    
영적 은사(2) (고전 12:4-7)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듯이 고린도교회 교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믿기 전에 이방종교의 우상숭배와 미신으로 살던 사람들이 많았기에, 믿고 나서도 그 관습을 버리지 못하여 악한 영들이 주장하는 가짜 은사들이 심각하게 영향을 미쳐서 교회에 혼란과 분열을 가져왔었습니다. 영적 은사들을 잘 분별하지 못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받은 은사들도 잘못 사용하여서 교회에 악영향을 끼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가 정말 성령을 받았는지 아니면 악한 영으로 하는지 구별할 수 있는 예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3절)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세주와 주로 고백하시는 분들로 성령을 받았음을 믿습니다. 사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을 바로 알아 주로 고백하게 하시며, 교회를 하나되게 하십니다.
   그 동안 고린도전서를 살펴본 바와 같이 고린도교인들은 모든 일을 영적으로 보다는 육신적으로 반응하였기 때문에 서로 분열상을 보이며 싸우기도 하고(3장), 서로 법정에 고소하기도 하고(6장), 부도덕적이며 이교도들의 관습을 따라 행하며(6장), 부부 관계도 타락하였고(7장),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방종으로 사용하며(8-9장), 하나님 중심보다는 자기 중심으로, 세상적으로 살아왔던 것입니다(10장). 그래서 영적 은사에 관한 문제도 육신적인 분쟁의 결과로 그 은사들을 오해하며 잘못 사용했던 것입니다(12-14장).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성령님께서는 믿는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지켜가도록, 교회의 덕을 세우도록 영적 은사들을 허락하십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에서는 성령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여러 가지 영적 은사들을 주시는데, 이는 여러 가지 능력들이 나타나는 여러 가지 사역을 위하여서 이지만 공통적인 목적인 우리 모두를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선 영적 은사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4절).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은사(gifts)”라는 원어는 복수로 쓰였는데 은혜의 선물들, 거저 받는 선물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 성경에 모두 17번 사용되었는데, 모든 구절들에서 은사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예를 들면 구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로 말하고 있습니다(롬 5:15-16; 6:23). 그러므로 은사라는 것은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교회를, 성도들을 섬기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선물입니다.
   이 영적 은사는 재능(talents)과 다릅니다. 태어나면서 가진 재능, 기술, 능력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지만, 이런 것들은 믿지 않는 자들도 갖고 있습니다. 탁월한 예술가들, 과학자들, 체육인들 등에서 나타나는 것들 말입니다. 만약 믿는 자에게서 그런 탁월한 것들이 나타난다 하더라고 그것은 구원과는, 성령님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믿는 자이기에 그런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해야 하겠지요.
   또한 영적 은사는 사람의 기질과는 다릅니다. 예를 들면 타고난 성질대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무슨 일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워낙 열심히 일을 하기에 말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제재를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만약 누가 제재를 한다 하더라도 그는 끝까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이것은 은사가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의 기질(natural character), 독특한 성질입니다. 이런 기질로 일하는 사람의 특징은 반드시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주어야 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인정해주지 않으면 힘들어집니다. 또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냅니다.
   But the spiritual gifts are not natural, but rather are supernaturally given by the Holy Spirit only! 정말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은 자들에게만 주어집니다. 믿는 자들이라면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말입니다(7절). 영적 은사는 믿는 자들이 특별한 능력으로 서로를 섬기고 사역을 감당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이 은사를 사용하지 않거나, 잘못 사용하면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인 교회가 올바로 사역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일이 잘 안되거나 방해가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초점은 이 은사는 여러 가지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 다양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역이 다양합니다. 은사가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분열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하나됨을 지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에게 똑 같은 은사를 일률적으로 주시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주십니다. 은사들의 종류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12:8-10,28, 로마서 12:6-8, 에베소서 4:11 등에 열거되어 있습니다만, 아마도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당시 초대교회들 안에 대표적으로 있었던 은사들을 설명하셨습니다. 물론 성도들이 이들 가운데 꼭 하나만 갖고 있었으리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은사는 다른 은사에 비하여 더 강하게 나타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에 의하면 이 여러 가지 은사들이 일반적으로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말씀으로 섬기는 은사와 행동으로 섬기는 은사입니다. 그래서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0-11)이라고 하였습니다.

   둘째로, 은사가 여러 가지이니 그에 따른 직임도 여러 가지라고 합니다(5절).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직임(service)”이라 함은 섬김, 봉사를 말합니다. 즉 성령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은사를 여러 가지 사역에, 섬김에 사용하도록 하셨습니다. 또 동일한 은사라도 직임이 다를 수 있습니다. 정말 다양한 섬김, 봉사들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예수님도 섬기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었습니다(막 10:45). 그러므로 반드시 알아야 할 진리는 영적 은사들은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나를 위하여 주신 것이 아닙니다.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무슨 특권이 아닙니다. 섬김의 도구로, 사역의 도구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면 비교해서도 안되고, 차별해서도 안됩니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가 있다면 그것 가지고 교회를, 다른 사람들을 섬겨야 합니다. 그것이 복입니다. 왜냐하면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니까요.

   셋째로, 그 역사도, 즉 효과도 여러 가지라고 합니다(6절).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역사(working)”라는 원어의 뜻은 영적 은사를 가지고 섬길 때에 나타나는 효과(effects)를 의미합니다. 그 능력을 말합니다. 은사가 여러 가지이고, 그에 따른 직임도 여러 가지이듯이, 각자 섬기며 일할 때에 나타나는 능력도 여러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능력에, 효과에 차이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의 능력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결과(열매)가 나타나더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만약 게으르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면 말입니다. 즉 동일한 은사를 가진 어떤 분에게서 더 큰 능력이나 결과가 나타나더라도, 아니 반대로 더 적은 능력이나 결과나 나타나더라도 개의치 말아야 합니다. 다양하게 나타남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가 된다(unity)’는 것이 다 ‘똑 같아야 된다(uniformity)’는 뜻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다 다르지만 서로 조화를 이루며, 받아들이며 같은 성령님께서 주신 것으로 하나됨을 지켜가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속마음보다는 겉모습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실제적이고 내용이 있는 결실(열매) 보다는, 남들 보기에 겉으로 어떻게 인정받느냐에 관심을 가집니다. 어떻게 세상에서 더 인기가 있고, 권력이 있으며, 성공한 사람으로 보일까 하여 서로 비교하면서, 짓밟으며 높아지려고 치열한 경쟁을 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성도들은 겉보다는 속이 중요합니다. 외적으로 남에게 인정받기 보다는 속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기 원합니다. 실제적으로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합니다. 세상에서의 성공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섬김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저 주신 선물에 대하여 신실하기 원합니다. 사람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같이 은사들을 자랑하며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했습니다. 은사들을 차별하여 더 눈에 드러나는 은사들을 원했고, 그렇지 않은 은사들을 무시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은사를 가지고 주님을 섬기며 그의 몸인 교회를 섬기기보다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하여 자신의 능력으로 나타내기 원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바울은 영적 은사들에는, 그 직임들과, 그 역사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자신들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그 근원이 삼위일체의 성령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부 하나님에게 달린 것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4절에서는 “성령이 같고”, 5절에서는 “주는 같으며”, 6절에서는 “모든 사람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또한 영적 은사의 목적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7절)고 하였습니다. 영적 은사들을 통하여 성령님이 분명히 있음을 나타내게 하는데, 그 궁극적인 목적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유익하게 하려(for the common good)” 라는 단어는 원래 의미가 ‘하나되게 하려’ 혹은 ‘돕기 위하여, 이익을 위하여’라는 뜻입니다.
   즉 영적 은사는 공동체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교회를 덕스럽게 세우기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그 백성들을 하나되게 하기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서로 도와서 허락하신 은사들을 더 잘 사용하여 유익하도록 말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그렇게 섭섭하거나 화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들이 허락하신 영적 은사들을 잘 사용한다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교회를 왕성하게 하십니다. 능력있게 하십니다. 성령의 놀라운 능력들이 나타납니다. 하나됨의 기쁨과 사랑의 교제가 풍성해집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주님께서 세우신 주님의 영적인 몸인 교회에는 반드시 영적 은사를 가진 분들이 직임을 맡아 섬기며, 성령의 나타냄을 보이셔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의 직분을 계급으로 생각을 하고 거부합니다. 그런 것 없어도 일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 나타난 초대교회들에게도 있었듯이 직책이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직임이 주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책임 있게 섬기고 봉사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데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은사나 능력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 인격을 갖춘,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상식이 통하는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요즘 얼마나 상식을 벗어난 태도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그런 사람들을 향해 ‘개념 없다’ 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합니다. 문제는 교회를 다닌다는 사람들 중에 그런 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자기에게 무슨 은사가 있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은 무시하고 자기 나름대로 잘 믿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 믿음이 있는 성도라면 그의 말과 행동에 신앙 인격이 나타나야 합니다. 어느 누가 보아도 존경할만한, 멋있고 아름다운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은사를 많이 받았다고, 신앙이 좋다고 하면서 부모도 거역하고, 목사도 무시하고, 주위 형제 자매들을 우습게 생각하며 자기 혼자 잘났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어디가 잘못되었어도 한참 잘못된 신앙입니다. 정말 변화를 받지 않는 한, 그 인생은 더욱 심하게 엉망진창이 될 것이며, 그의 주위 사람들도 그의 곁에서 힘들어 할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영적 은사를 받아 주께 잘 쓰임 받고 있는 성도들은 교회에 덕을 세우고,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영적 유익을 가져다 주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축복의 통로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하여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영적 은사에도, 직임에도, 그 나타나는 역사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 같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비교해서도 안되고, 차별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은사만 중요하고 내적으로 드러나는 은사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다 필요한 중요한 은사들입니다.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만 어떤 은사를 받았든 내가 게으르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그 은사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 섬기며,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말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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