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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3-05-20 (월) 06:0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959    
사랑이 없으면(고전 13:1-3)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을 마음에 간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마음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고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야만 합니다. 그런데 밖으로 표현되는 사랑도 성경이 말하는 사랑과 세상이 말하는 인간애(humanistic love, 혹은 人情) 사이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그 동기(動機, motivation)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동기에 주목하지만, 세상의 인간애는 행위와 결과에 주목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종종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베푸는 사람을 사랑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런 행위와 결과뿐 아니라, 그 동기가 중요합니다. 만약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자기 의를 위하여 했다면 그 동기가 적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경은 사랑이 아니라고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가장 큰 증거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즉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위하여 죽게 하신 동기는 우리를 향한 한없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경험한, 깨달은 사람만이 참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이 사랑과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군가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믿게 되었다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에 눈을 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진정한 감화, 감동이 없이 예수님을 알고, 믿는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일 4:8하).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하였습니다. 즉 십자가 사랑에 대한 진정한 경험이 없는 사람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수많은 죄를 위하여 대신 형벌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앞에 진정한 회개를 해본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세상에 오셔서 공생애 3년 동안 끊임없이 가난한자, 병든 자, 소외된 자, 버림받은 자, 억눌린 자, 죄인들을 섬기고 마지막에는 자기를 찢어 우리를 위한 대속물이 되어주신 주님의 삶이야말로 큰 긍휼을 몸으로 드러낸 생애였습니다. 그러므로 아가페 사랑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과 같이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특성인 사랑이 없는 것은 참으로 비극입니다. 신령한 체험을 많이 했다고 하면서 영적 은사들은 나타나 보이지만, 성경에 관한 지식도 많지만 사랑이 없습니다. 믿는다 하면서도 자기 밖에, 자기 가족 밖에 생각할 줄 모릅니다.
바울은 12장에서 성령의 은사들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14장에서는 은사의 바른 사용에 대하여, 특히 예언이나 방언의 은사 사용에 대하여 설명을 합니다. 바로 그 사이에 우리가 잘 아는 13장, 사랑장을 기록하였습니다. 이 13장은 사랑에 관한 관념적인 설명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감격적인 묘사를 기록하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이 사랑장의 첫 부분인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교훈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사랑은 방언이나 천사처럼 말을 잘 하는 것이나 많은 성경 지식이나,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나, 많은 물질로 구제하는 것, 심지어 자기를 그 무엇이나 누구를 위하여 온전히 헌신하는 일까지도 사랑을 말해 주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것이 성경이 말하는 사랑이 없이도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말에 어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랑이 신자를 신자되게 하는 속성이 틀림이 없는데, 그렇다고 모든 신자가 이 사랑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즉 사랑이 없이도 은사를 나타내고, 그럴듯한 말을 하고, 남을 돕고 구제하고, 놀라운 믿음과 지식을 소유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정말 그 사람에게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 알려면, ‘당신은 하나님을,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합니까?’라고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그 모든 말과 행동의 동기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 사랑, 주님 사랑이 동기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즉 사랑은 무슨 새로운 은사가 아니라 모든 영적 은사들의 기초가 되는,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이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다섯 가지 은사를 열거하면서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첫째는, 말에 대한 것입니다(1절).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에 대하여 말하는 것과 사랑 자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에 관하여 말하는 데에는 희생이 필요 없지만, 사랑을 하는 데에는 막대한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은 사랑을 달콤한 연애 감정으로 생각하지만, 진정한 사랑을 아는 사람은 사랑이 살을 에고 뼈를 깎는 것 같은 희생임을 압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미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들에게 희생이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말로만 하는 사랑은 시끄러운 징 소리, 꽹과리 소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도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 하였던 것입니다. 말과 혀로만 하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과 혀로만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과 혀로만 하는 사랑은 쉽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대가가, 전혀 희생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앞선 12장에서 성령이 신자들에게 주시는 은사들을 말하였습니다. 교회를 세워나갈 때에 필요한 은사들을 말씀하시면서 서로 존중하고 마음 합하라고 하신 말씀이었는데, 그만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서로 은사들을 자랑하고 경쟁하는 모습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본문 1절의 방언도 은사요 2-3절에도 나오는 예언, 지식, 믿음, 구제 다 은사의 종류들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라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비인격적인 징이나 꽹과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소리 나는 구리’는 징 소리를 말합니다. 징 소리보다 더 듣기 싫은 소리가 꽹과리 소리입니다. 정말 시끄럽습니다.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는 사람에게 사랑이 없으면 그 소리는 정말 듣기 싫은 소리가 되고 만다는 뜻입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이라면, 영적으로 성숙하여서 방언의 은사를 받았어도, 자기 안에 깊이 감추어 놓고 하나님을 만나는 데에만 사용합니다. 귀한 체험을 가지면 가질수록 겸손할 때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교제하기 원하시는데, 신령한 은사를 주시기 원하는데, 사랑이 없으면 그 인격적인 관계가 일그러져서 다른 우상을 섬기는 종교인들과 마찬가지인 비인격적인 징이나 꽹과리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말미암는 순종을 원하시지, 은사를 받았다고 자랑하면서 떠드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전혀 은혜가 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에 대한 것입니다(2절상).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요” 하였습니다. 성령께로 받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인간으로서 평범한 상식을 가지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계시와 놀라운 지식을 소유하게 되었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놀라운 예언을 하고 비밀스러운 지식을 이해해도 그것이 자신의 영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참 빛을 비추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도 보면 누구보다도 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논쟁을 하면 당해낼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아는 지식이 그 사람의 영혼에 전혀 도움이 되지를 않기에 삶의 변화를 보지 못하고, 믿음의 성숙함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심령에 하나님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주위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알고 있는 지식을 가지고 비판하고, 비난하는 일에는 앞장섭니다. 그래서 지식과 지혜의 은사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데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의 날선 검이라고 했는데 이런 날선 검으로 사람을 치기 시작하면 감당해낼 사람이 없습니다.

셋째는, 모든 믿음에 대한 것입니다(2절하).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하였습니다. 정말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로서의 믿음입니다(고전 12:9).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이 이 믿음의 은사가 아닙니까? 산을 옮길만한 믿음 말입니다. 엄청난 일을 맡아 하면서도 전혀 걱정을 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놀라운 기도의 응답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얼마나 잘못 생각하고 살아왔습니까?
여러분! 신비한 체험을 많이 하고 계십니까? 다른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잘 들어주시지 않는 것 같은데, 여러분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잘 들어주시고 역사하십니까? 주위 사람들에게 믿음이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까?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여러분은 하나님께 아무것도 아닌 사람일 수 있습니다. 사랑이 동기가 아닌 이상, 심지어 산을 옮기는 일들이 여러분들을 통하여 일어나고 있다 하더라도 여러분은 하나님께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여 일하시는 것과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자신 안에 나타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내면에 풍성한 사랑이 없이도, 우리의 섬김이 쓰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아주 비참한 일입니다. 때로 섬김 자체는 귀해도, 나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아낌없는 구제와 헌신에 대한 것입니다(3절).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도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혹자는 질문을 할 수 있겠습니다. ‘아니, 사랑이 없이도 구제할 수 있는가? 사랑이 없이도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헌신이 가능한가?’문제는 어떤 사랑인가 하는 말씀입니다. 서론에 말씀드린 인간애 혹은 동정심이 발동하여 구제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는 헌신도 가능합니다. 자신에 대해 돌아올 평판을 바라고 기대하며 구제하고, 선행을 통하여 자기 만족을 얻으려는 사람들 말입니다. 아니면 어떤 분들은 강박관념에서 구제하기도 하고 헌신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벌 받을 것 같은 부담 때문에 합니다. 이렇게 순수한 사랑이 아닌, 아가페 사랑이 아닌 것으로 구제하기도 하고, 자신 몸을 내어주는 사람들 세상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으로 하지 않는, 하나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그런 구제나 헌신은 그의 영혼에 아무 유익이 없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왜냐하면 사업을 하듯이 하나님의 일을 하기 때문에 수고는 많이 하지만 영적으로는 열매가 거의 없습니다. 큰 일을 해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가만히 보면 어느 분이 ‘I love you’하면 그 뜻은 보통 ‘I love me and I want you’일 경우가 많습니다. 아가페 사랑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이기적인 사랑으로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지요.
사실 사랑 받은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처음 태어날 때부터 철저히 죄로 말미암아 부패하였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참된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그 사랑을 깨닫고 받아들인 사람은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좋은 하나님을 알았기에 이 세상에 있는 것들 대신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조차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조차 사랑합니다. 주님이 자신을 어떻게 용서하고 사랑하셨는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한쪽 뺨을 때리면 또 다른 쪽 뺨을 돌려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좀 특별하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죄조차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실행에 옮기지 않은 죄조차 용서를 구합니다. 이와 같은 차이는 모두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 사랑을 체험하였기에 이런 삶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사랑이 우리에게 없으면 천사의 말도, 놀라운 지식도, 산을 옮기는 믿음도, 구제도, 내 자신을 내어주는 헌신도, 우리는 믿지 않은 사람들과 특별히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하여 그 하나님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면 사랑의 능력이 마치 은사처럼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따라서 과거에 주님의 사랑을 한번 체험했다고 해서, 사랑의 은사를, 은혜를 한번 받았다고 해서 그냥 있으면 안됩니다. 첫 사랑 이후에도 계속 그 사랑 받고 주며, 끊임없이 자라가야 합니다. 왜 자꾸 우리는 옆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됩니까? 칭찬이나 위로와 격려의 말보다도 헐뜯고 깎아 내리는 말을 하게 됩니까? 이유는 아가페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첫사랑이 식어졌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대한 감동이, 감격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라고 하는 신앙공동체는 사랑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곳입니다. 교회 안에서 다른 형제, 자매들을 진정으로 이해해 본 적이 없으면서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다른 사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사랑한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여 이해하려는 노력이 사랑의 첫 걸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존재이유는 사랑임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사랑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 되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없으면 존재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예수님을 늘 기억하면서, 그 사랑을 경험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사랑할 때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을 고칠 힘이 없지만, 우리 안의 사랑은, 예수님은 우리와 세상을 고칩니다. 우리의 사랑을 보고 세상은 놀라며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을 통해 세상에 예수님을 알리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존재 이유입니다. 사랑을 가지고 있을 때에만, 우리는 비로서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그 사랑으로 말하고, 그 사랑으로 섬기고, 그 사랑으로 행동하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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