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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1-04-25 (월) 21:3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012    
복음의 증인입니까?(행 3:11-18)
오늘 본문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사도 베드로의 두 번째 설교 내용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있던 앉은뱅이 거지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적을 베풀고 난 후에, 그가 걷고 뛰면서 하나님을 찬미하며 성전에 들어가는 사건이 발생하자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여기저기서 솔로몬의 행각이라는 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11절). 아마 거기는 정말 그가 나았을까 하는 의구심에서 확인하려고 오는 사람들, 베드로와 요한이 과연 사람인지 보고 싶은 호기심에서 온 사람들, 자기도 몸이 불편하여 혹시 나을 수 있는지 도움을 받기 위하여 온 사람, 그리고 어쩌면 그들을 시기 질투하며 못마땅하여 꼬투리를 잡아 쫓아버리려고 하는 사람들 등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모였을 것입니다. 두 사도를 마치 신들(gods)이 사람으로 변하여 내려와서 기적을 행한 것 같이 쳐다보았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설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12절하) 외칩니다. 두 사도는 그 기적을 스스로 자랑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을 주목하지 말라고 합니다.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선한 일을 한 뒤에 그 영광을 자기의 것으로 돌리는 죄를 범합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습니다. 성경에도 그런 예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웃시야 왕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강성하여지자 그 마음이 교만하여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자기가 가로채다가 결국 문둥병에 걸려 비참하게 인생을 마칩니다(대하 26:16-21). 또한 헤롯 왕도 사람들이 자기를 너무 추켜주니까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자기가 취하다가 벌레가 몸을 먹어 며칠 만에 몸이 썩어서 죽었습니다(행 12:23). 교만은 사실에 대하여 눈을 멀게 하는 악한 것입니다. 패망의 선봉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분은 ‘교만은 열등감의 또 다른 표출로서 무식한 자의 자기 과시일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본받아 그저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줄로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겸손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베드로는 첫번째 설교(행 2:15-36)에서도 그러하였듯이 본문의 두번째 설교에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합니다. 그 이름이 능력이 있어서 고침을 받은 것임을 강조합니다. 16절에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고 외칩니다. 즉 자신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온전히 믿었기에 그 이름을 의지하고 기도하여서 기적을 체험하였다는 말입니다. 어떤 이름이기에, 예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기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이러한 능력을 나타내신다는 말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합니다. 13절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너무나 잘 아는 이사야서 52:13-53:12절에 있는 말씀을 의미하시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고난의 종으로 표현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이 성취되어, 하나님께서 그를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철저하게 복종하셨습니다. 자신 스스로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섬기려고 하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오셨다고 하였습니다(마 20:28). 그리고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39상)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종을 영화롭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우리도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입으로 기도할 때마다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잘 섬기며, 우리 옆에 있는 사람을 잘 섬길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지금 베드로는 유대인들이 너무 잘 아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십자가의 고난의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였음을 강조합니다.
둘째는, 거룩하고 의로운 자라고 합니다. 14절에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하였습니다. 거룩하다는 뜻을 구별되었다는 말이며, 의롭다는 것은 어떤 죄도 모르는 무죄함을 뜻합니다. 즉 예수님은 비록 우리의 죄 때문에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만, 세상에서 구별된 하나님의 뜻을 위한 삶을 사셨으며, 비록 많은 유혹을 받았지만 죄를 모르는 분이었다는 말입니다(히 4:15). 예수님에 대한 이러한 표현도 이사야서에서 메시아를 가리켜 예언 되어진 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제자라고 한다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구별된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비록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적이어서는 안됩니다. 세속적이어서는 안됩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그럴 수도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살면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꾸짖을 것입니다. 양심에 거리낄 것입니다. 성도라는 말 자체가 거룩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닙니까? 그리고 의롭게 살려고 힘써야 합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힘입어 죄와 싸워야 합니다.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거룩하고 의로운 주님을 의지하고 이길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셋째는, 생명의 주라고 합니다. 15절에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하였습니다. 여기 생명의 주라는 말은 생명의 근원,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4),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니라”(요일 5:20)고 증거한 것처럼 말입니다. 아니 예수님 스스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7)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베드로는 생명의 주이시니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고, 우리가 다시 사신 주님을 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이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생명의 주 이심을 확실히 믿으십니까?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자들은 이미 영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이런 메시아, 하나님의 종, 거룩하고 의로운 자, 생명의 주이신 예수님을 유대인들이 빌라도에게 넘겨주었고, 또 빌라도와 그 부인은 그가 무죄인 것을 깨닫고 놓아주려고 진짜 살인자인 바라바를 내세웠건만 그들이 바라바를 살려주고 주님을 죽였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악한 짓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그들은 얼마나 죄책감에 빠져 버렸겠습니까? 그래서 베드로는 그들을 위로하기를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 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17-18절)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미 구약 성경에서 예언되어진 메시아에 관한 일로서 성취되었다 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예수님이 누구이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여러분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오늘 사도 베드로의 설교에서 나타난 예수님은 하나님의 종, 고난의 종, 섬김의 종, 거룩하고 의로운 자요, 부활의 생명의 주이십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믿습니까? 성경에서는 예수를 믿는 자를 가리켜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고 합니다. 그 뜻은‘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입니다. 또한 성도(聖徒, Saint)라고 부릅니다.‘거룩한 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종, 고난의 종, 섬김의 종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세상사람들과는 구별된 거룩한, 의로운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이름만 신자인, 기독교인 티만 내는 생활은 곤란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변화를 받으셔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 없는 이 세상의 모든 복은,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모든 일은 다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살아계십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이 세상의 가장 존귀한 분이 되셨고, 하나님의 모든 복은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가장 큰 복은 부활의 주, 생명의 주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믿으면 특별한 관계가 맺어져서 하나가 됩니다. 마치 신랑과 신부가 하나가 되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도와주어야 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내 자신이 주님과 하나되어 주님의 은혜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오늘도 살아계셔서 나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복 주시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자꾸 내 문제에 얽매어 있으면 다른 사람을 위한 축복의 통로가 되지를 못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축복해 주어야 하는데, 내 문제에 빠져서 다른 사람에게 가야 할 복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문제는 온전히 주님께 맡겨놓고,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하여 애를 써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내 문제도 해결이 됩니다.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첫 걸음이 베드로가 15절에 고백하는 것처럼 바로 복음의 증인이,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증인(witness)”이라는 헬라어 원어와 똑 같은 단어가 순교자(martyr)입니다. 자신들의 눈으로 똑똑히 보고 들은 것에 대하여 목숨이 위태해진다 하더라도 증거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복음의 증인, 부활의 증인입니까? 여러분 자신이 소유한 복음, 생명의 주께서 이미 허락하신 생명을 증거하고 사십니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입을 열어 증거합니까? 아니 몸소 복음의 증인처럼, 부활의 증인처럼 행하고 사십니까? 주님을 닮아 섬김의 종으로, 불신자들과는 구별된 거룩하고 의롭게 사십니까?
우리는 시시때때로 부활의 능력, 죽어도 다시 산다고 하는 소망을 증거할 책임이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라면 누구나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입니다. 사실 그것이 너무 좋고 소중한 것이라서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의 증거를 듣고 생명을 얻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그런 은혜가 넘쳐서 복음의 증인, 부활의 증인으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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