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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0-01-26 (화) 00:2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028    
[1/24/10] 부르신 부름의 상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빌 3:12-16)
사도 바울은 신앙생활을 종종 운동 경기를 사용하여 비유적인 표현으로 교훈한 적이 많습니다. 권투나 레슬링, 마라톤의 용어를 사용한 적이 많은데, 새해 첫 주일에도 말씀 드렸듯이, 오늘 본문도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경주자의 삶으로 우리 신앙생활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본문 14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하신 말씀이, 21절까지의 주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저와 여러분을 택하셔서 부르신 까닭은 구원을 받아 천국에 이르는 것뿐만 아니라, 훗날 그 부름의 상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부르신 부름의 상을 생각하며,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 성숙해져야 함을 간절히 열망함을 나타냅니다.
먼저 문맥을 살펴보면 3장 4-11절에서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변화된 삶을 말하면서, 사도로서의 권위를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화려한 이력(履歷)을 나열하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그러한 세상적, 종교적 이력에 비교할 때에 배설물에 지나지 않음을 선포합니다. 인간적으로 성취한 모든 것을 얼마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나 그 의, 능력, 또한 주님을 알고 교제하는 것과 바꿀 수 있음을 담대히 말하고 있습니다.
한편 빌립보교회 안에는, 내 힘으로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는다는 율법주의자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면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주장하는 완전주의자들로 혼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오직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받는 것과 구원받은 신자가 세상에서 불완전하게 살고 있기에, 완전히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되는 시간까지 이 세상에서 성화(聖化)의 과정을 거치며 더욱 영적으로 성장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12절 상반절에도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하였으며, 13절 상반절에도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주로 믿고 사는 성도는 자신을 불러주신 하나님의 부름에 합당한 상을 위하여 영적으로 성숙해 지려고 발버둥을 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닮는 완전한 그 날에 이르기까지 내가 영적으로 성장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고후 3:18). 우리 아이들이 육체적으로도 자라기를 원하듯이 영적인 아이들도 자라기를 원하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하여 만족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도 신약성경의 유일한 그의 서신을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벧후 3:18) 라고 끝맺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왜 우리는 영적으로 더욱 자라가야 합니까? 1)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2)받은 구원이 진짜임을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즉 구원의 확신을 가져다 줍니다. 3)영적으로 미성숙하여 오는 슬픔과 고통에서 보호해주기 때문입니다. 4)성도의 삶에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5)섬기고 봉사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때문입니다. 6)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진리가 참인 것을 나타내며, 잃어버린 자들에게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그렇게 영적으로 자라가기 위하여 필요한 몇 가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최선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12절을 다시 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고 합니다. 여기 "좇아가노라" (press on) 하는 단어는‘뛰어간다, 따라간다’라는 뜻으로, 적극적으로 힘을 다하여 좇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내가 영적으로 성장하여 예수님을 닮아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바울의 목적이 그를 구원해주신 예수님의 목적과 같기에, 즉 로마서 8장 29절,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심이니라"고 하신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게 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데살후 2:14).

둘째는, 그 한 가지 푯대, 초점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13절에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쫓아간다고 하였습니다. 초점에 집중하는 것이 없이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는 것은 전혀 쓸모 없습니다. 모든 운동선수들은 경주하는 자가 앞에 놓인 목적지에 눈을 떼지 말고 집중하여야 함을 잘 압니다. 만약 옆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이나 TV 카메라에 시선을 자꾸 두기 시작하면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지금 내가 완전한 자가 되지 못하였으니, 또 이 세상에 사는 한 내가 완전한 자가 될 수는 없으나, 일심으로 그 푯대를 향하여 뛴다는 것입니다.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처럼(약 1:8)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뛰는 사람이 뒤를 쳐다보며 경주한다면 넘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회개를 위한 자기 반성이나,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회고를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죄로 인하여 죽었던 자기 과거에 집착하여 현재 삶에 용기를 갖지 못하여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하거나, 과거의 성공을 회상하며 현재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쳐다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창 19:26). 예수님은 죽은 자들은 죽은 자들로 장사하게 하라고 하면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못하다고 하였습니다(눅 9:57-62). 우리 성도들의 경주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입니다. 죄된 과거는 하나님께 자복하고 회개하여 깨끗이 버리고, 과거에 받은 축복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에서 ‘잡으려고’하는 말은 앞서 말씀드린 최선을 다하여 내 근육의 한계까지 늘려서 목적지까지 뛰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에 머물러 안주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니 자만하거나 방심하지 않고 목적지에 집중하여 뛴다는 것입니다. 만약 현재라고 하는 제자리에 멈추거나 주저앉아 버리면 지금까지 달려온 과거는 송두리 채 없어지고 맙니다. 부르신 부름의 상을 잃고 맙니다.

셋째는, 올바른 동기(動機)가 요구됩니다.
14절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좇아가노라"고 하였습니다. 이 상은 우리 성도들이 경주하여 승리하는 동기를 제공합니다.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상은 주께서 우리를 저 천국으로 인도하실 때에 주어집니다(참고- 마5:12; 눅 6:23; 고전 3:12-15). 마지막 결승점은 천국입니다. 바울은 임종을 앞두고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고 고백하였듯이, 그 동안 부지런히 한 가지 목적에 집중하며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뛰어온 그에게 의의 면류관이라는 상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성경이 기록할 당시에 아테네에서는 올림픽 마라톤 승리자에게 월계관을 머리에 씌워주고 500 드라크마의 상금이 주어지며, 원형극장에서는 특석으로 제일 앞줄 귀빈석에 앉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승자에게 주어지는 영예로운 상급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상급 개념을 영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영적인 경주를 꾸준히 할 수 있는 동기는 그 마지막에 있을, 하나님께서 주실 부름의 상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바울은 이어서 이 세 가지를 바로 인식하여 행동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15-16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우리 성도들을 가리켜 온전히 이룬 자라고 한 것은 신분상(positional)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의인이라 칭하여 주심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바울이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생각하고 목표를 향해 쫓아가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만약 다르게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거나, 다른 일을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실 것이라고 합니다. 훗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되어 상을 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16절에는 행하라고 합니다. 최선을 다하여, 한 목적을 가지고 집중하되 왜 내가 계속 목표를 향해 쫓아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 동기, 상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여러분! 저는 새해 첫 주일에 다시 일어서는 힘을 주님으로부터 받아 살자고 했습니다. 벌써 넷째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그 동안도 부르신 부름의 상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정말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노력하였습니까? 다른 곳에 한눈 팔지 않고 목적지인 푯대에 초점을 집중하여 뛰어 왔습니까? 느슨해질 때마다 주님 만날 그 시간에 주실 부름의 상을 바라보았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성도들은 과거나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미래지향적인 역사의 생리(生理) 때문입니다.
우리는 계속하여 주님 만나는 그 시간까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목적지에 도달할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여야 합니다. 한 가지 목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 위하여, 그 초첨을 잃지 않고 집중하여서 달려가야 합니다. 이유는 우리를 부르신 부름의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점점 밤은 깊어가고 낮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어둠의 옷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할 때입니다.
어떤 분은‘시간은 급히 달려오는 날개 돋친 마차’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날개 돋친 마차를 빨리 타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고 하였습니다. 누군가는 돌아오지 않을 네 가지를 지목하였는데, 1)입으로 내 뱉은 말, 2)날아간 화살, 3)지나가버린 인생, 4)놓쳐버린 기회(시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의미 있고, 내용 있는 말을 해야 하고, 화살이 과녁에 적중하도록 집중하여 쏘아야 하고, 인생이 다 지나간 후에 후회하지 말고 보람 있게 살아야 하고, 기회를 놓치기 전에 잘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유명한 시인 H.W. Longfellow 는‘당신이 왜 그 일을 그릇되게 했는가를 설명하는 데에 시간을 쓰지 말고, 당신이 그 일을 어떻게 바르게 행하고, 행하였는가에 시간을 사용하라. 그것이 더 짧게 걸리고, 더 많은 일을 창조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에 얽매이는데 소비하는 시간보다 미래를 생산하는 데에 창조적인 시간을 사용하라는 말로 여겨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을 바라보고 푯대를 향하여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며 사시지 않겠습니까? 두 마음을 품지 않고 한 목적에 집중하여 뛰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위하여 말입니다. 여러분을 불러주신 부름의 상을 바라보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있는 자원들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 신구약 66권이 있습니다.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니라"(벧전 2:2)고 하였습니다. 둘째, 기도입니다.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의 온전하게 되는 것이니라"(고후 13:9하) 라고 하신 것처럼 기도가 우리를 온전케 합니다. 셋째, 성숙한 성도를 본받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본받으라고 하였습니다(고전 4:16; 11:1). 그리고 주어진 어려운 환경입니다. 토기장이 하나님께서는 종종 고난을 사용하셔서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우리를 빚으십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벧전 5:10)고 하였습니다. 이미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와 같은 자원들을 잘 선용하여 힘차게 달려감으로, 더욱 주님 만날 그 날을 사모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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