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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9-06-08 (월) 04:4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148    
[6/7/09]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섭리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사도행전 23:12-35)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성도들이라고 해서 이 세상 삶에서 큰 어려움, 절대절명의 위기를 만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이 순례의 길에 우리도 진퇴양난에, 사면초가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우리 아버지께서 피할 길을 내시고 헤쳐나가게 하심을 믿습니다. 아마 여러분들 가운데 과거에 그런 경험을 하신 분들이 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런 경험을 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은 자주 어려운 곤경에 처하곤 했습니다. 동족 유대인들에게 거짓 고소를 당하고, 매를 맞고, 결박 당하게 되고, 옥에 갇히게 되기도 하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때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위기를 넘겼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께서 그 절대절명의 위험한 상황에서 그를 보호해 주십니다. 무슨 초자연적인 기적을 통해서가 아니라, 환경이나 상황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말입니다.
구약에 보면 사도 바울과 비슷한 극도의 어려움에서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자주 체험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도 부당하게 취급을 당했고,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 속에서 몇 번씩이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피할 길을 체험하였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권위를 존중한 예로 말씀드린 유명한 다윗입니다. 그는 청소년 시절에 영감있는 비파 연주를 잘하여 악신으로 고통당하는 사울 왕에게 추천이 되어, 비파 연주로 왕을 치료하여 사울 왕의 은총을 입고 그의 병기 맡은 자가 됩니다(삼상 16:14-21). 그러다가 블레셋 군대의 골리앗을 물리쳐 사울 왕과 이스라엘을 구하게 됩니다(삼상 17:17-52). 그래서 사울 왕이 다윗을 군대장관으로 삼지만(18:5), 자신보다 다윗이 백성들에게 인기가 많자 시기 질투와 의심으로 다윗을 죽이기로 합니다(18:6-11). 그의 왕궁에서 다윗을 살해하려다가 실패로 끝나자 그를 내쫓고,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임을 당하도록 최전방에 배치하지만 오히려 다윗은 승리를 거두면서 백성들 사이에 그 이름이 더욱 귀하게 됩니다(18:17-30). 그 이후 사울은 계속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신하들을 시키지만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딸 미갈, 그리고 사무엘 선지자의 도움으로 살아남습니다(19장). 그리고 나서 다윗은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하여 광야로, 굴로 피하는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사울 왕을 존중합니다(24장, 26장). 사울 왕의 자살로 끝이 나는가 싶더니, 그의 아들 이스보셋이 이스라엘 북쪽 지파 사람들과 연합하여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전쟁을 일으킵니다(삼하 2:8-9). 수년 간의 내전 끝에 다윗은 통일왕국을 세우지만, 그 후에도 다윗은 믿었던 충신이었던 아히도벨과 조카 아마사의 배신과 함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키어 그를 죽이려고 해서 결국 왕궁에서 쫓겨났었습니다(삼하 20장 이하). 그러나 이와 같이 계속되는 여려움 속에서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기에 그는 다시 왕으로 복귀하여 솔로몬에게 왕국을 이어가게 했습니다. 시편을 살펴보면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다윗이 때때로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섭리를 체험하여 쓴 시가 참으로 많습니다. 한 예가 사울 왕을 피하여 가드까지 도망갔다가 블레셋에게 잡힌 때가 있었으나,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 앞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지 않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시 56:10-12)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아무리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무리들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돌보신다는 확신을, 신앙을 보여주는 그의 고백이 아닙니까?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도 그런 위기 속에 과거에 낙심할 때도 있었지만, 지난 주일에도 보았듯이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담대하라”(행 23:11)고 하시며, 앞날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죽지 않을 것을 약속하시고, 로마에서 복음을 증거하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오늘 본문의 사건을 통하여 더욱 그의 소망을 굳건하게 하셨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봅시다.

로마 시민권을 소유하였기에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의 도움으로 산헤드린 공의회 분쟁 사이에서 빠져나온 바울은 이제 가장 위험한 고비를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유대인들 중에 바울을 죽이는 결사대가 조직된 것입니다(12-13절). 이 40여명의 결사대는 목숨을 걸고 바울을 암살하기로 서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알카에다와 같은 극단적 무슬림 테러리스트들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음식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기로 서약했습니다. 이들이 음모를 꾸밉니다. 천부장에게 좀 더 조사할 것이 있다고 하면서 바울을 부른 후에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칼로 찔러 죽이는 것이었습니다(15절, 20-21절). 바울은 전혀 자유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라고 하면 가야하고 가는 중에, 자신을 찌르고 암살자들이 도망을 쳐버려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바울의 조카가 있었습니다(16절). 아마도 바리새인으로서 바울의 암살 음모를 자세하게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즉시 바울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 음모를 들은 바울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한 공동체에서 한 사람이라도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참 마음이 불편한 것이 사람인데, 한 두 사람이 아니라 40여명이 목숨 걸고 자기를 죽이겠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아마 11절의 주님의 음성이 없었더라면 바울도 낙망하였을 것입니다.
음모를 들은 후 바울은 백부장을 불러서 자기 조카를 천부장과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17절). 바울의 조카를 통하여 그 암살 계획을 알게된 천부장은 그 날 밤에 바울을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옮깁니다. 자신의 병력 반 정도를 할애합니다. 보병 200명, 마병 70명, 그리고 창군 200명을 준비되어 무려 470명이 바울을 VIP처럼 호위하여 밤 제 삼시(9시)에 가이사랴로 이동하게 합니다(23-24절). 그는 애초 로마 시민인 바울을 불법적으로 홀대한 것이 마음에 걸렸고 불상사가 발생할 경우 자기가 책임을 져야 했기에 철저한 보호를 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죄인의 자리에 있던 바울이 왜 이렇게 갑자기 VIP가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바울이 주님에게 중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바울의 조카와 천부장의 군대를 빌어 그를 보호하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바울을 생명의 위험 가운데 내버려 두시지 않으시고, 조카를 통하여 미리 알려주셔서 위험을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바울이 자신의 가족에 대하여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가 아무런 가족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독신이었던 그도 우리와 똑 같은 가족 관계의 애환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족 가운데 누이의 아들로 말미암아 위험을 벗어나게 됩니다.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이지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지요.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지혜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운 시험을 당할 때 미리 알고 겪는 것과 전혀 모르는 가운데 당하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어떤 큰 일을 당하면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자녀들에게 큰 어려움을 당하기 전에 미리 알려주시고 또 피할 길을 주셔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물론 여기서 우리가 또 하나 알아야 할 것은 아무리 우리를 지켜주신다 약속하였어도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즉 바울이 조카가 와서 암살 계획을 가르쳐 주었는데도, ‘걱정하지 마라.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 너는 왜 그렇게 믿음이 없느냐?’라고 핀잔을 주었더라면 아마 바울은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 신앙을 맹신이라고 합니다. 참 믿음이 아닙니다. 아무리 주님께서 승리를 약속하시고 또 안전을 약속하셨다 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언제나 긴장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게 하는 것입니다. 비록 결국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사탄의 세력을 물리치고 승리할 것을 믿지만, 주님의 일 가운데 어느 하나도 쉬운 것은 없습니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최선을 다할 때 주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승리하게 하는 것이지,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게으른 자는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로마 천부장이 벨릭스 총독에게 바울에 대한 보고서를 쓴 것을 보면 바울에게 상당히 우호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26-29절). 바울에 대한 이 짧은 보고서가 기독교에 대한 로마의 최초의 공식적인 평가였습니다. 즉 기독교는 로마 사회에 전혀 해로운 사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에 의하여 로마 군인들이 바울을 헤롯 궁에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33-35절). 오히려 위험한 것은 유대교 자체였지 기독교는 로마에 대하여 위험하거나 적대적인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이 사도 바울이 뿌린 씨앗으로 인하여 결국 로마 제국은 기독교 국가가 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바울은 그의 서신 곳곳에 이렇게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신실하시다는 표현을 종종 사용하였습니다(고전 1:9; 고후 1:18; 데살후 3:3 등). 자신을 향하신 미쁘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바울 뿐 아니라 베드로도 그런 경험을 하였기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 5:7)고 하였습니다. 여기 권고하신다는 뜻은 돌보신다는 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사 43:1-3절상)고 하였습니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살아계실 때 제자들이 ‘언제 이 세상 종말이 옵니까?’라고 물었을 때에, 주님께서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임하느니라”(마 24:28)고 대답하셨습니다. 여기 주검은 시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살았으나 불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이 움직이지도 않고, 말씀을 들어도 눈물을 흘릴 줄 모르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독수리같이 임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음성에 믿음으로 반응하고, 늘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하며, 지속적으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사는 우리들에게는 어떤 악한 세력의 군대도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이유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사도 바울처럼 주님에게 중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성도들에게는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 증거의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의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주신 사명이 있는 한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직 우리를 필요로 하는 한 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운데 내가 아직 내가 왜 살고 있는지 이유를 모르고 계시다면, 잊고 계시다면, 아니 잃어버리셨다면 다시 찾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사명을 잊지 않고, 그 사명 감당하기 위하여 오늘도 애 쓰신다면 비록 깜깜한 밤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진퇴양난이나 사면초가에 빠졌다 하더라도 절망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호하시고, 건져주시고, 인도하실 것이니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위하여 필요한 사람인데, 하나님께 중요한 사람인데 그냥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확실히 믿으십시오. 섭리를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위기 가운데 로마 군대를 사용하여 구해주신 것처럼 당신의 자녀를 위하여 세상의 어떤 자원도, 어떤 환경도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심지어 믿지 않는 자들까지도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보호하시는 섭리를 확실히 믿으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이 땅을 사는 사명을 잊지 않으신다면,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애쓰신다면 반드시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확실히 믿으십시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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