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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4-01-20 (월) 12:0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643    
영광의 복음의 빛(고후 4:1-6)


혹시 바닷가에서 새벽에 동이 터오는 장면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빨갛게 저녁 노을이 지면서 온 세상이 캄캄해지는 장면을 보셨습니까? 너무나 멋진 장면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발하게 되지요.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태초에 천지 만물이 창조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면, 온 세상이 아주 캄캄한 그 흑암과 공허, 혼돈 속에 어디선가 “빛이 있으라”(창 1:3) 하는 음성에 한 줄기 빛이 비추어지는 현장에 있었다면 그 감격과 흥분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6절에서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라고 바울이 말하는 것이 바로 처음 천지창조 시에 있었던 역사를 염두에 두고, 그 놀라운 영광의 빛과 같은 것이 복음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는 말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사역과 부활의 영광을 믿을 때, 죄의 어두움 속에 있던 우리의 심령에 빛으로 비추어졌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죄의 권세를 물리치고 자유함을 얻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는 은혜가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광의 복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영광의 복음의 말씀만 선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전도라는 명목으로 교회의 문턱을 낮추어서 보다 더 많은 사람이 흥미를 가지게 해야 한다면서, 예배나 교회 프로그램에 세상적인 요소를 섞어서 재미있게 만들자고 합니다. 이는 정말 진리를 모르는 주장이며 영광의 복음의 빛을 과소평가하는 시도입니다. 영광의 복음이,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선포되면 듣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태초에 천지가 창조될 때처럼 경이로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어둠과 공허함 속에 살던 그들에게 빛이 비추어지지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무지 변할 것 같지 않던 사람이 변하게 되고, 그 마음이 조금씩 열리면서 믿음의 반응을 하기 시작합니다. 심령에 빛이 비추어지면서 진리에 대한 눈이 열리게 되어 그 빛을 보게 되고, 귀가 열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바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순간입니다. 할렐루야!

   사도 바울은 3장에서 옛 언약(구약)의 영광과 새 언약(신약)의 영광, 곧 율법의 영광과 성령의 은혜의 영광은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말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한 이후로 이미 신약의 성도들은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주님 재림하시면,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3:18)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영광의 복음으로 인하여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낙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1절) 하였습니다. 여기 “직분”은 사역(ministry)을 뜻하는 말입니다. 복음을 전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도, 순수한 복음만을 전한다고 해서 어떤 핍박과 고난이 오더라도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고 낙심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낙심하지 않는다”라는 단어의 뜻은 두려워하지 않고, 비겁하게 굴지도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이미 그들의 심령에 받았기 때문에 말입니다(6절).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그 영광의 복음의 빛을 받았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성령 체험을 하셨다면 어떤 어려움에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해도 반응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도 조금도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그 영혼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더 기도해야 합니다.  
   영광의 복음이 잘 전달이 안 된다고 해서, 교회가 부흥이 안 된다고 해서 은밀하게 수치스러운 방법을 사용하거나 속임수를 쓰지 말고 지속적으로 순수한 진리의 말씀 만을 전해야 합니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자신 있게,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2절)고 하였습니다. “숨은 부끄러움의 일”이란 당시 유대인들이나 이방종교인들처럼 진리를 잘 모르면서 아는 척 말하거나, 은밀하고 수치스러운 방법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얻고자 하는 일을 뜻하며, “궤휼”은 속임수, 기만전술을 뜻합니다. “혼잡하게 한다”는 거짓 선지자들처럼 자신의 욕심을 이루고자 불순물을 섞는 것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세상적인 것들을 섞어서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그렇게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다른 것을 섞지 않으면서 그대로 순수하게 진리만을 선포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떳떳이 각 사람의 양심에 맡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 안에 바울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그 어떤 말에도 자신은 떳떳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다른 것을 섞어서 좀 재미있게 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런 식으로는 영혼을 살리지 못합니다. 바울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거나 유명해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죄는 죄라고 말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하라고 요구합니다. 천국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지옥도 있다고 외칩니다. 사람들이 듣기 싫어한다고 어떤 진리의 말씀은 전하지 않고,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사랑’만 외치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사람을 살리거나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면 충분합니다. 예배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 교회에 편하게 와서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믿는 자들이 천지 만물의 주재자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몸과 마음을 헌신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영광을 뵈옵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받은 영광의 복음의 빛을 반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혹시 믿지 않는 자들이 와서 예배를 보다가 그 빛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고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분들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것에 대하여 바울은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3절)고 하였습니다. 즉 아무리 순수한 복음을 전해도 듣는 사람의 마음을 가리고 있는 것이 있으면 끝까지 거부하여 멸망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 빛을 도무지 받으려 하지 않고, 변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빛을 받은 사람들은 성령이 역사하여 변화하기 시작하고 점점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 “망하는 자들”이라 함은 어떤 사람들은 죽는 순간까지도 영광의 복음의 빛을 거부하여 멸망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4절에 보면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자꾸 영광의 복음의 빛을 가리우는 것이 이 세상 신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 신은 사탄, 마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속임수를 사용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영광의 복음의 빛이 비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인간의 철학이나 사상에 깊이 빠지게 하거나, 거짓에 넘어가게 합니다. 마치 무엇에 씌운 사람처럼 진리를 가리웁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그들을 사탄에게 그냥 내버려 두면 안됩니다. 몇 번 두드린 후에 그 사람의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고 해서 ‘망할 자’라고 정죄하거나,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계속 두들겨야 합니다. 사랑을 부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이 아니고 택함을 받은 사람이라면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죽는 순간에라도 빛 되신 주님을 영접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 6:44)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겸손히 종의 자세로 영광의 복음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라는 사실만 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종이 된 것을 전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된 것을 전파함이라”(5절)고 하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자신들이 유명해지고 인기를 끌기 위해서 자신들을 선전한 것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가 온 세상의 주님이 되시는 것을 전했습니다. 또한 그 주님을 위하여 그들의 종이 되었다고 전했습니다. 종의 자세로 그들을 섬겼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단지 말과 행동으로 ‘예수님이 구세주이며 주님이십니다’라고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음을 선포하고, 그렇게 종처럼 살아야 합니다. 종은 자기 권리가 별로 없습니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고 사는 것입니다. 자원하여 희생하고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도 좋고 기쁜 것입니다. 주인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저의 동역자로, 하나님 나라의 사역자로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시는 여러분들! 이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빌어 격려하기 원합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어떤 분이 영광의 복음의 빛을 영접하지 않는다고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거나 비겁해지지 마십시오. 안 된다고 자꾸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속이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저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십시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람을 살리고, 고치고, 변하게 하십니다. 오직 성령님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들의 필요를 직접 다 채워줄 수 없습니다.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돈을 주고, 병이 들었다고 해서 병을 다 고쳐주지 못합니다. 부부의 문제나 자녀들의 문제도 다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인생들이 만나는 그런 모든 문제는 그들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방편입니다. 그들의 근본적인 영혼의 필요를 느끼게 함으로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가게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며, 교회의 사명입니다.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마십시오. 말씀에다가 자꾸 다른 것을 섞지 마십시오. 세상적인 생각이나 사상, 유행을 더해서 재미나게 만들려고 할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순수하게 영광의 복음만 전하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다 보면 인간적인 사랑이나 자신의 만족감을 위하여 교회에 오는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낙심하지 마시고, 더욱 겸손히 종의 자세로 섬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택한 자녀들이라면 언젠가는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심령에 천지창조 때의 경이로운 기적을 체험하게 될 날이 옵니다. 아직 캄캄한 흑암 속에서 혼돈과 공허함으로 살아가는 영혼들에게 영광의 복음의 빛이 강하게 비추게 되어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때가 옵니다.
   그리하여 공허하고 부패한 마음이 새로워지게 됩니다. 모든 더럽고 추한 것들이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삶이 정리가 되고,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살게 됩니다. 더욱 진리의 말씀을 사모하게 되는데 이제는 영혼의 눈이 떴고, 영혼의 귀가 열려서 말씀이 너무 잘 들리게 됩니다. 삶이 변화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제는 영광의 복음의 빛으로 살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우리의 말과 행실로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이며, 주이심을 전파하며, 우리가 그들의 종이 된 것을 전파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정말 종처럼 사십시오.

   교우 여러분!
   혹시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마음의 문을 꽉 닫고 영광의 복음의 빛을 거부하고 계시는 분은 없습니까? 지금 이 순간 마음의 문을 열고 그 빛을 받아들이십시오. 영광의 복음의 빛입니다. 사랑의 빛입니다. 이 부족한 종을 사용하여 지금도 여러분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성령을 부어주시기 원하십니다. 새로운 창조를 경험하기 원하십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죄를 사하실 뿐만 아니라 자녀를 삼으시고 영원토록 교제하시기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하셨습니다. 지체하지 마십시오. 바로 지금이 구원을 받을 때이며 은혜를 받을 때입니다(고후 6:2).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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