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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2-10-01 (월) 09:01
분 류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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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872    
교회와 세상(고전 5:9-13)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가장 혼동이 오기 쉬운 것이 바로 이 세상과 어떤 관계를 설정하고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다른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판을 치는 세상 속에서 우리 성도들이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얼만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들과 너무 친하게 어울려 사는 것은 의미도 없고, 위험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하여 직장에 다니기는 하는 데 믿지 않는 사장이나 상사를 위하여 전심전력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적당히 하고 우리의 모든 힘과 정력은 오로지 믿는 자들 안에서 교회 일에 모두 쏟아야 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써서 고린도교회에 보내기 전에 짧은 서신을 먼저 보내었었는데 거기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라고 한 것 같습니다. 물론 그 편지는 없어져서 남아 있지를 않습니다. 그 편지에 쓰인 이 말을 그들이 잘못 이해하여 아예 고린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과 사귀지 말라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시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다 음행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아예 세상과는 담을 쌓고 살라고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린도교인들 중에는 그렇게 세상 사람들과 담을 쌓고는 살 수가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노예 신자들이 많았는데, 상전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어떻게 상전과 사귀지도 않고 산다는 말입니까? 즉 이 세상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살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다 수도원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그렇게 수도원 생활을 하면 정말 거룩한 자가 되는 것입니까? 그런 뜻이 아니라고 바울은 10절에서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이 세상과 완전히 격리되어서 생활해야 된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사실 세상 밖에 나가는 길은 죽는 것입니다. 수도원이라고 해서 완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 속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어두움을 비추는 빛의 역할을, 썩어져 가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막는 방부제로서의 소금의 역할을, 살아가는 데 맛을 내는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로서 구별되게,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 제자들을 위한 마지막 기도에서,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기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5-19)라고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입니다. 대사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합니다. 믿지 않는 고용주 아래서 일하기도 하고, 우상을 섬기는 주인 아래서도 일하기도 합니다. 바울은 그런 일을 그만두라는 뜻이 아닙니다. 물론 내가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그런 자들과 동업을 하거나 그런 자들 아래서 일을 일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쩌면 고린도교회 안에 바울을 대적하던 사람들이 바울의 사역과 권위를 훼손하기 위하여 9절 말씀을 오해하면서 이용한 것 같습니다. 바울이 교인들에게 모든 죄인들과 사귀지 말라고 했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근거 삼아 그의 모든 가르침을 무시했을 것입니다. 반대로 모든 죄인들과 사귀면서 하나님 사랑을 전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지난 주일에 살펴본 바와 같이 근친상간의 죄를 지은 자까지 용납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의도가 그것이 아님을 11절 이하에서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자신이 이야기한 음행하는 자는 믿는다고 하면서 음행하는 자를 말했던 것입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11절)고 하였습니다. 즉 믿는다고 하는 교인으로, 형제라고 말하는 자가 음란하거나, 탐심으로 남의 것을 가로채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 즉 다른 사람을 욕설하고 비방하거나, 술 취하거나, 습관적으로 도둑질을 하는 사람과는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어떤 분들은 고개를 갸우뚱 할 수 있습니다. 아니 믿는 사람들끼리 좀 잘못한 일이 있으면 사랑으로 덮어주고 이해해야지, 어떻게 그렇게까지 따돌릴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불쌍하게 생각하고 감싸주지는 못할망정 아예 음식까지 함께 먹지 말라는 것은 너무 심한 것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그런 자들과는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우리 모두는 아직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다 그런 죄에 오염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을 그대로 받아주면 그 나쁜 영향을 우리가 받게 되어, 신부인 교회가 더럽혀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그런 죄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어느 교인(?)이 그렇다고 하면 큰 충격을 받아야 합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나도 그런 죄를 지으면 어떻게 하나 두려워 떨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죄에 대하여 애통하는 자입니다. 나는 의롭고, 나는 그런 죄인이 아니기 때문에 죄를 지은 형제를 징계하여 내쫓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나도 그런 죄를 범할 수 있는 연약한 자이기 때문에 이런 죄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둘째는, 비록 형제라 하는 교인이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참 믿음이 있는 형제라면 회개하고 변화될 가능성이 있기에 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 주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형제는 ‘그런 죄를 지어도 괜찮구나’ 라고 여기게 되면 회개하지 않습니다. 돌이키지 않습니다. 무딘 양심이 놀라지도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인 양 계속 죄 가운데 있게 됩니다. 즉 그런 죄를 가만히 덮어두고 넘어간다면 그의 영혼을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잠시 동안이라도 사귀지 않고 함께 먹지도 않으면서 관계가 고통스러워진다 하더라도, 죄에 대하여 한번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나면 자신이 얼마나 무서운 죄에 빠졌는지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께 돌아올 가능성이 많습니다. 만약 돌아오면 한 영혼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교인)들 중에서 가장 불쌍한 교회(교인)은 날이 지나고, 달이 지나도, 해가 바뀌어도 변화하지 않는 교회(교인), 자라가지 않는 교회(교인), 성숙해지지 않는 교회(교인)입니다. 그런 교회(교인)은 사데 교회와 같이 살았으나 죽은 교회(교인)입니다(계 3:1). 왜냐하면 생명력이 있는 교회(교인)은 반드시 변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라가게 마련입니다. 점점 죄를 덜 짓게 되어 있습니다. 점점 의로운, 경건한 삶의 모습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렇게 변화하는 교회, 자라가는 교회, 성숙해져 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바울은 믿는다는 교인이 죄에 빠져 있을 때에 징계하라고 한 것은 그가 회개하고 돌아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죄 가운데 사는 것에 대하여서는 자신이 판단할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라고 합니다. “외인들을 판단하는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 내어 쫓으라”(12-13절)고 하였습니다. 외인이라 함은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죄를 짓던 안 짓던 자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아무리 죄를 가르쳐 주어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나중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니 상관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런 세상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전도해서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의 인침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도 면하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크신 은혜 가운데 우리처럼 살 것입니다.
   하지만 교중 사람들, 즉 믿는다는 교인이라면서 회개하지 않는 그런 죄인들은 교회가 판단하여 내어 쫓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그런 근친상간의 죄를 범한 사람은 당연히 이방인 취급을 하여 내어 쫓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는 교회만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도 다스리고 계십니다. 다만 잠시 잠깐 이 세상을 사탄 마귀들에게 약간의 권세를 주었습니다. 물론 사탄 마귀들이 하나님의 권세를 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교인들이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 세상을 정복해야 합니다.
   빛의 역할을 함으로, 소금의 역할을 함으로 정복하는 것입니다. 비록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사업도 하고, 직장 생활도 하고, 학교 생활도 하지만 심지어 가정에도 믿지 않는 식구들이 있지만 우리는 믿는 자로서 최선을 다하여 구별되이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중적인 삶, 이원론적인 삶을 살면 안됩니다. 즉 교회에서 생활과 세상 속에서의 생활이 다르면 안됩니다. 교회에서도 열심히 사랑하고 섬기고 봉사하듯이, 세상에서도 열심히 사랑하고 섬기고 봉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일터에서, 사업체에서, 학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은혜가 나타나야 합니다. 아니 만왕의 왕 되시는 주님의 다스리심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 가운데 여러분을 보고 주님 앞으로 인도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죄에 대하여 정말 심각하게 여겨야 할 곳은 교회(교인)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더러운 귀신 하나가 어떤 사람에게서 떠났다가 별 신통치 않아서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갔더니 깨끗이 청소가 되고 수리가 되어서 좋은 데 주인이 없어서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살게 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악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마 12: 43-45; 눅 11:24-26).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귀신론을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서 귀신이 나가게 되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일시적으로 감화를 받고 선해졌다는 뜻입니다. 그 후로 욕도 덜하고, 식구들도 덜 괴롭히고, 다른 사람에게도 해를 덜 끼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삶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주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예수님을 믿고 주님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상황이 좋지 않게 되었을 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에는 일곱 귀신이 들어가 이전보다 더 악해져서 막 산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이 잠시 그의 타락상을 늦추었을 뿐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Savior and Lord)로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전히 자기 중심적으로 살며 자기 신념대로 산 것입니다.
   결국 누구든지 십자가 앞에서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자아를 죽이지 않는 이상, 삶의 주인이 예수님이 되지 않는 이상 절대로 이 세상을 역류해서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성령의 능력이 아니면 정복할 수 없습니다. 계속 빛을 발하면서 어둠의 세력들을 몰아내고 진리로 변화 받게 해야 합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이 세상이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부패의 속도가 조금 느려질 뿐입니다.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기까지 말입니다. 비록 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지만 이 세상이 덜 악해지도록, 덜 부패하도록 우리는 성령의 힘으로 최선을 다하여 싸워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악해도 결코 이 세상을 떠나서는 안됩니다. 현실을 회피하면 안됩니다. 포기해도 안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비록 불완전하고 부분적이라 하더라도 여러분 주위를 천국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여러분과 같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죄악을 막아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김치를 절일 때에도, 생선을 요리할 때에도 반드시 소금이 필요하듯이 이 세상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꼭 필요합니다.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어떻게 이 세상을 도울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복종하고 살면 됩니다. 여러분의 삶의 중심에 주님을 놓고 살면 됩니다. 믿고 의지하면서 다 맡기고 살면 됩니다. 주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여러분을 지배하고 있는 무지나 미신이나 음란을, 우상을 몰아내야 합니다. 결단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 큰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여 세상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죄성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기독교 문화로, 기독교 음악으로, 미술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우리 믿는 자들의 산물이요, 우리 생활의 열매입니다. 열매를 보고 약간의 관심을 기울일 수는 있습니다. 조금 착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종교가 없는 사람이나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도 나타날 수 있는 현상입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주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기 전까지는 근본적인 변화는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와 세상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참된 교회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는 제사장 나라입니다. 그곳에는 변화가 있습니다. 영원히 썩지 않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계속 부패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면서 이 세상이 덜 부패하게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저 방관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을 천국처럼 만드는데 목숨을 걸어서는 안됩니다. 주님 재림하시기까지 이 세상이 천국으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회를 천국처럼 만드는 데에는, 정결하게 지키는 데에는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천국의 모습을 방해하는 어떤 죄악된 모양도 제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의 말씀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온전히 받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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