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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2-10-19 (금) 02:43
분 류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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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979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2-20)




많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말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그리스도인(Christian)의 단순한 정의(definition)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주님에게 속해 있다는 뜻이 아닙니까? 대부분의 신자들이 그 의미를 알고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누군지 신분(정체성)을 잊고 사는 것을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고, 주님을 섬기는 종(servant)으로서 살아야 함을 잊고 있음을 종종 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을 주로 부르면서도 자신이 주인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그 고백이 거짓이거나 잘못되었던지, 아니면 계속 주인 행세를 하면서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에게 속해 있는 종이 자기 것이 있습니까? 있다고 한다면 잠시 주인께서 맡겨 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다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주께 속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잠시 맡고 있는 청지기(steward)입니다. 우리의 몸, 건강, 소유, 돈, 시간, 남편이나 아내, 자녀들 모두가 다 주님의 것입니다.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중 오늘은 본문 말씀에서는 우리의 육체, 몸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귀하고도 귀한 것입니다. 절대로 학대해서는 안 됩니다.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면 가장 가치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고린도교인들은 바울의 가르침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나, 전통으로부터의 자유만을 강조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자유로 생각했습니다. 사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성도 간의 소송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것에 대하여 바울은 그들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해서 하는 것이 다 유익한 것이 아니라고, 방종을 경계했습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12절)고 하였습니다. 내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지만, 마음대로 다 한다고 해서 다 유익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서 다른 행동에 제재를 받게 되는 것이 어리석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미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13)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삶의 목표가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방종하고 삽니다. 삶의 목표가 뚜렷한 사람들은 절제된 자유를 누리고 삽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목표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절제하는 사람이 주님께 잘 쓰임을 받습니다.
   당시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식욕과 성욕을 같은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둘 다 인간의 본능인 것은 같으나 바울은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합니다. “식물은 배를 위하여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13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식물, 배를 다 폐하신다고 함은 먹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나중에 부활했을 때에 전혀 먹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고 얼마나 만족해 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몸으로 무엇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먹는 것으로 배를 채운 후에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먹는 것은 배하고만 관계가 되지 인격전체와 관계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고린도교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창녀와 성관계를 맺으면서 ‘이것은 배가 고파서 밥을 먹는 것과 같다’ 라는 식으로, 성욕을 식욕과 같이 한 테두리 놓고 합리화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관계는 그렇게 단순하고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몸은 성욕을 채우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목적이 있는데 바로 주를 위하여서 입니다(13절하). 그럴 때 주께서 그 몸을 위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몸을 사용해서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우리의 몸을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주님의 뜻을 위하여, 그 영광을 위하여 몸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서 오느냐 하면 주님의 부활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14절)고 하였습니다. 이 부활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면 우리의 삶이 주님을 위한 것으로, 다른 사람을 위한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자기 밖에 모르던 사람이 다른 사람의 wellbeing 을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를,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 일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어떤 사람들은 성욕을 식욕처럼 생각하면서 자신의 욕망만 채우면 되지 상대방은 상관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창녀와도 관계를 갖고 욕구를 채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상대방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남편과 아내들이 서로를 완전히 소유하고, 사랑하는 의미로 성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더욱 하나가 되고, 서로를 존중함으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15절)! 주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 몸과 영혼이 주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17절).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귀한, 가치 있는 몸이 되었습니까? 제대로 사용해야지요. 자주, 잘 사용해야지요.
   바울은 창녀와 성관계를 가지는 자는 창녀와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6절에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성관계는 짐승과 달리 인격적인 결합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하고 관계하는 자는 자기를 짐승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짐승이나 그렇게 삽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성(Sex)’이라고 하는 중요한 것을 맡기셨습니다. 부부 사이에 소중한 것이며, 복입니다. 이것을 절제할 때 사람은 고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육체라고 해서 마음대로 사용하면 반드시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이 ‘성(Sex)’도 나의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날 이 불신 세상이 가르치는 것은 ‘사랑하면 얼마든지 성 관계를 가질 수 있다’ 입니다. 이것은 무서운 마귀의 유혹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무서운 죄가 바로 육체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성적인 죄입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18절)고 하였습니다. 다른 죄는 거의 다 죄의 열매가 몸 밖에 있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지만, 음행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자기 몸을 더럽히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인격에 손상이 가고, 믿는 자라면 그 죄책감이 영원히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떨치고 지우려고 해도 음란한 생각이 계속 머리를 지배하며 발목을 잡고 늘어집니다. 올무에 걸리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죄를 다 회개하고, 그 죄와 완전한 관계가 끝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주님의 뜻에 온전히 사용될 수 없습니다.

   우리 몸은 선한 목적을 위하여 쓰임 받아야 합니다. 믿는 자 안에 성령께서 내주하십니다. 19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몸이 움직이는 성전이라고 합니다. 성전이라고 하면 언뜻 무슨 생각이 납니까? ‘거룩함’, ‘세상과의 구별’, ‘예배’와 같은 것이 아닙니까?
   너희의 몸은 성령이 거하는 곳으로서 이제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유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 결과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20절)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죄로부터,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구원하시고자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의 피 값을 지불하고 산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대가를 지불하시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구속(救贖)하셨습니다. 죄의 노예로, 사탄의 노예로 살다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 받아야 될 우리를 값을 지불하고 사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것으로 삼으셨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 하였습니다. 주님의 보혈, 그 귀한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기에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므로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성전은 예배를 위하여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기 위하여 있습니다. 즉 우리 몸의 존재 목적은 이 한 가지 목적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동일한 내용의 말씀이 10장 31절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영원한 표어이기도 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도덕적인 기준보다 훨씬 높은 기준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 하였습니다. 세상적인 기준과는 비교가 안 되는 삶의 기준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우리의 몸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임을 알고 하나님께 우리의 몸으로 영광을 돌리라고 하시는 말씀은 두 가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소극적으로 이 몸을 나쁜 용도로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육체의 욕망에 넘어가서 죄짓는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믿는 자에게도 욕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욕망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규범 안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몸을 절제하여 바른 용도로 사용하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해서 오직 신앙적인 열정으로 불태우라는 뜻이 아닙니다. 관리 차원에서 우리에게는 휴식이 필요합니다. 먹고 마실 때는 먹고 마셔야 합니다. 사랑을 나눌 때에는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을 향하는 바른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규범을 넘어서 욕망을 채우면 죄가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자가 됩니다.
   이런 말씀을 듣고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방법으로 자꾸 자기 욕망을 채우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만약 참된 신자라면 그 안에 있는 성령께서 근심하십니다. 마음에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이 없어집니다. 그러고도 계속 죄 짓는 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그 육체를 치셔서 징계하십니다. 기뻐하라고 하셨는데 기뻐하지 않고 미워하거나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매일같이 염려할 때 그는 나중에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두번째로, 적극적인 의미에서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목적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사용하여야 합니다. 이 몸은 아껴두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 몸은 죽기 전까지 마음껏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무서운 죄가 하나님께서 그렇게 귀한 값을 지불하고 사신 몸을 그냥 가만히 모셔 두는 것입니다. 아직 그래도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 당하는 이들보다 건강하여 사용될 수 있는 몸이라면 주께서 사용하도록 내어 주셔야 합니다. 어떤 기계가 좋은 기계입니까? 많이 사용되는 기계이지요. 잘 관리하여 우리의 몸을 주를 위하여, 남을 위하여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본적인 훈련부터 해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나를 부르시면,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나를 부르면 달려가는 훈련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이웃에게 먹을 것을 주며, 이야기를 들어주며, 나를 원할 때면 나의 몸을 쓰도록 대여해 주는 훈련입니다. 자기만을 위하여는 시간을 다 쓰고 주님은 쳐다보지도,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는 자는 주님 앞에서 상을 잃게 될 것입니다.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신학적인 토론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몸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형제, 자매들을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내가 싫다고 해서 거부할 수 없습니다. 결국 나의 몸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 위하여 다른 사람이 나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내어주는 그 사람이 진정으로 부활의 능력대로 사는 자이며 하나님 앞에서 상 받을 자입니다.
   이제부터라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어떤 집에서 살까, 어떤 차를 타고 다닐까 하는 차원에서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옳은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몸으로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 수 있을까 하는 방향에서 살도록 합시다. 나의 몸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것입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영광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 나라와 의를 위하여,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하여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신앙이 어릴 때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자라면 자랄수록 ‘나’ 라고 하는 영역은 없어집니다. 그리고 나의 삶은, 내 몸은 온전히 주님의 것이 되어, 다른 사람이 마음껏 사용하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영광인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 함은 주인되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지시겠다는 뜻입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사 43:1-3상) 하였습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의 종으로 산다 함이 우리가 모든 일에 자유가 없이 제약을 받고 사는 불행한 사람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행복을 누리며 산다는 것입니다. 마치 물고기가 절제하지 않고 물을 떠나면 죽고 말듯이, 물 안에서 마음껏 행복을 누리며 산다는 것입니다. 깨닫기를 축원합니다. 믿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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