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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2-08-13 (월) 08:50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618    
세상적인 신자입니까?(고전 3:1-9)
누구나 처음에 예수님을 믿을 때에는 신앙생활하는 것이 많이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자신이 성령을 받았음을 알고 놀라운 체험이 있은 다음에는 신앙생활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예외 없이 성령을 받고 믿음이 생긴 후에 이 믿음을 지키며 산다고 하는 것이 정말 힘든 것이 깨닫게 됩니다. 거룩하게, 의롭게 예수님처럼 산다고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자신이 예수를 믿는데, 믿음 생활하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정말 성령을 받았는지, 믿음이 참 믿음인지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며 거룩한 구별된 삶을 산다고 하는 것이 힘든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아직도 이 세상의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의 세력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가진 믿음과 정반대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마치 연어가 알을 부화하기 위하여 급류를 거꾸로 하여 올라가듯이 세상 조류를 거슬려 살아야 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 안에 아직도 남아 있는 죄성 때문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 그 원죄가 전가되어 우리 안에 있는 죄성입니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으로 인침을 받고, 속 사람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께서 의인이라고 불러주어도 우리 안에 죄성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무덤에 갈 때까지, 주님 재림하셔서 우리의 몸을 영광스러운 몸으로 바꾸어 주실 때까지 우리의 육체에 죄성이 남아 있어서 성령과 싸움을 하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이나 3절에서 말하는 “육신에 속한 자”는 지난 주일에 살펴본 성령을 받지 않은 2장 14절의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헬라어 원어가 다릅니다. 2장에서는 자연인(Natural Man)을 가리키며, 3장에서 말하는 육신에 속한 자는 육체를 따라 세상적으로 사는 신자(Worldly Christian; Carnal Christian)를 말합니다. 성령을 받았지만 아직 세상적으로 사는 신자입니다. 그런 사람을 가리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한다고 하였습니다”(1절하).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겸손한 어린아이들을 좋아하셨다는 구절(눅 18:16-17)과 연결시켜 성경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하면 자신이 무식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기 어린아이는 헬라어 원어 자체도 틀리고, 2절에 의하면 젖먹이 갓난아기를 뜻합니다. 유아식도 제대로 못 먹는, 말도 못하는 아기를 말합니다.  
   이런 세상적인 신자는 어린 갓난아기가 엄마 젖이나 우유병을 빨면서 자기 밖에 모르는 것처럼, 설교나 성경 말씀도 아주 기초적이며 기본적인 것이나 받아들이고, 다른 깊이 있는 말씀은 받아들이지도 않고 소화도 못 시킵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라는 말씀에만 머뭅니다. 좀 교리적인 말씀으로 중생, 칭의, 대속, 양자됨, 견인이라든가 예정론, 자유의지, 절대주권, 죄 죽임 등의 깊이 있는 말씀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히 5:13)라고 하였습니다.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들어도 금방 잊어버립니다(약 1:25). 그러니까 말씀을 순종하고 살지 못합니다. 성령을 받을 때 조금 변하여 신자가 되긴 했지만 하지만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거의 불신자의 수준에 그냥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막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진짜 초신자들이 그렇다면 좀 이해를 하겠습니다. 이제 하나 둘씩 배워가며 젖을 떼게 되고, 이유식과 밥을 먹게 되면서 스스로 걷고 뛰게 될 날이 곧 오리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은 지가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 5년 이상 되었는데도 아직도 젖을 먹거나 우유병을 빨고 있으면서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라면, 갓난아기처럼 흙 가지고 장난하는 세상적인 신자라면 이것은 상당히 큰 문제입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바울은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3절)라고 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젖 먹는 갓난아기야말로 자기 밖에 모릅니다. 조금이라도 배고프면 못 참습니다. 젖 달라고 울부짖습니다. 자고 싶은데 못 자게 하면 투정을 부립니다. 무엇이든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안되면 그냥 울어 버립니다. 고집을 피웁니다. 그래서 부모가 응석을 다 받아주어야 합니다.  바로 원죄를 갖고 태어난 인간의 모습입니다. 죄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중심적이다 보니 시기와 분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시기, 혹은 질투는 분쟁을 제공하는 원인이 되는 태도나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것이 채워지지 않으니까, 내 중심대로 안되니까 시기심, 질투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을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분쟁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죄된 욕망은 암과 같습니다. 암이 종류가 많듯이 죄된 욕망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도 종류가 많습니다. 그런 죄성을 따라 사는 모든 종류의 사람을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 1:29-31)고 하였습니다. 그런 것들이 마치 몸 안에 암을 그대로 두면 퍼지듯이 각 지체들에 퍼져서 결국 주님의 몸된 교회 전체를 파괴합니다.
   바울이 교회를 개척한 지가 수년이 지났고, 아볼로가 바울을 이어서 목회를 한 지도 꽤 지났는데도 1장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고린도교인들 가운데 시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4절)라고 바울이 꾸짖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라는 뜻은 ‘너희의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무엇이냐’라는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로 분쟁하고 갈라지고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 모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니 너무 세상적이라는 말씀입니다. 믿음 생활을 한 지가 얼마나 되었는데 아직도 이제 막 예수를 믿은 초신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보통 교회 안에서 ‘세상적이다’라고 이야기하면 교인들 가운데 술 먹고, 담배 피고, 세상 노래를 좋아하며 춤추고 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데, 사실 그런 피상적인 나쁜 습관보다 훨씬 뜻이 깊습니다. 세상적인 신자라 함은 그 사고방식이 세상적인 사람을 말합니다. 믿는 태도나 행동이 세상적인 사람을 말합니다. 세상의 기준에 따라, 세상 철학이나 세상의 인기인들의 사고방식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살아가는 목적이 세상의 불신자들이 갖고 있는 목적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언제 예수를 믿었습니까? 교회를 다닌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집사, 권사, 장로를 오래 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교회를 좀 성실하게 다니면 그런 직분은 얼마든지 받습니다. 여러분의 영적 수준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은 받았는데, 교회를 다닌 지 꽤 오래되는데 아직도 젖먹이 갓난아기 수준입니까? 죄된 욕망으로 살아갑니까? 세상적인 사고방식과 세상 문화에 젖어서 재미를 느끼며 살아갑니까? 죄성이 작동하기만 하면 쉽게 시기 질투심에 사로잡혀 분쟁을 일으킵니까? 아직도 이 세상을 사는 목적이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집에서 잘 살기 위한 세상적인 목적입니까?
   제발 자라십시오. 좀 달라지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를 몇 년 다녀서 집사라고 하는 분이, 권사라고 하는 분이 입에 우유병을 물고 다녀야 하겠습니까? 흙 가지고 장난해서야 되겠습니까? 조금이라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투정부리고, 시기 질투하며 분쟁을 일으키려고 해야 되겠습니까? 훈련을 받으십시오. 갓난아기도 우유병을 떼려면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유식을 먹고, 밥(고기)을 먹는 훈련을 해야합니다. 늘 기어 다니다가 걸으려면 훈련을 해야 하듯이 말입니다. 기도 훈련, 말씀 훈련을 하셔야 합니다. 성경의 깊은 진리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 혼자 스스로도 밥을 해 먹고, 운동도 하고 하셔야 합니다.
   정말 내가 왜 사는지 하나님 앞에서 목적을 분명히 세우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말하는 핵심은 정말 구원 받은 사람이라면 분명한 목적을 갖고 사는데, 자신의 몸을 사용하여,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입니다(고전 10:31). 그렇지 않으면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에 물들어 좋지 않은 영향을 받으며 죄성의 욕망만 채우고 살게 됩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교회 안의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은 모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라고 권면합니다. 물론 젖을 떼고, 우유병을 떼고 밥을 먹는 자가 되어서, 모이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일에,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강조합니다. 바울이든, 아볼로든 다 주께서 각각 은사를 주신대로 그들에게 믿음을 갖도록 수고한 사역자들로서 바울이 복음의 씨를 뿌렸다면 아볼로는 물을 준 일 밖에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5-6절). 믿게 한 분, 믿음이 자라게 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만 영광이 돌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고린도교인들 가운데 그 동안 자란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구 잘못입니까? 바울입니까? 아볼로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저는 교인들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씨를 뿌리고 물을 주어도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물과 영양을 빨아들이며 옥토 밭으로 바꾸지 않으면 열매가 맺힐 수 없습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성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화는 하나님과 동업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내 자신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랄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시는데 본인이 전혀 협조를 하지 않으면 결코 자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강제적으로 자라게 하지 않으십니다. 인격적인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지정의를 설득하셔서 노력하게 하여 자라게 하십니다. 즉 여러분의 책임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루 아침에 성숙해지는 것 아닙니다. 꾸준한 노력과 연습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실패도 합니다. 그러나 다시 일어섭니다. 어린아이들이 스스로 걸으려고 하거나, 자전거를 타려고 할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초등학교를 지나 사춘기에 방황과 실수를 하면서도 성숙한 어른들을 보고 배우며, 좋은 책을 읽고 깨닫고 나서 철이 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세상적인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7-8)고 하였습니다.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8절)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바울이나 아볼로도 열심히 주어진 은사를 따라 일을 했기에 상급이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함이 하나도 없이 믿음 때문에 순전히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지만 상급은 여러분들이 노력한대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참된 주님의 제자로 살려고, 밥을 잘 먹을 뿐 아니라 단단한 음식도 잘 소화를 시키면서 묵묵히 제자도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충성하는 사람, 전도에 힘쓰고, 양들을 돌보는 일에 힘쓰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오래 참는 사람에게 상급이 주어집니다.
   바울은 자기나 아볼로나 베드로나 다 하나님의 동역자들 일 뿐이요, 고린도교회는 하나님의 밭이고,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였습니다(9절). 즉 교회의 일 맡은 사람들은 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이며, 교회는 하나님께 속한 집이라는 말씀입니다. 누구는 씨를 뿌리고, 누구는 물을 주고, 누구는 비료를 주고, 누구는 잡초를 제거하고, 누구는 매일 관심을 베풀어 하나님께서 열매를 거두어 영광을 받으시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한 후에 바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게 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훈련을 시키기 위해서 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들의 문화에 젖어 들지 말고, 우상신들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훈련을 잘 받지 못하고 출애굽 1세들은 거의 가나안에 못 들어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육신에 속한 세상적인 신자입니까? 아니면 신령한 자입니까? 아직도 젖먹이 어린 아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까? 성장하십시오. 성숙해 지십시오. 밥(고기)도 먹고 소화시킬 수 있는 신령한 자(Spiritual Man)가 되십시오. 신령한 자들도 그 영적 수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며, 거룩하게 산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훈련을 계속 받아야 합니다. 결코 세상적인 신자에서 머무르지 마십시오. 얼마나 부끄럽습니까?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주의 종들의 도움을 받아 자라가는 것입니다.  열매 맺는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배웠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배움을 통하여 내가 얼마나 자랐느냐는 것입니다. 그저 매 주일 반복적으로 똑 같은 죄를 짓고 또 똑 같은 회개 기도를 하는 신앙에서 자라서 얼마 후에는 ‘주님 제가 반복적으로 짓던 죄를 지난 주간에는 이겨냈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정말 여러분 모두는 매 주일이, 매 달이, 매 년이 쑥쑥 자라는, 주님 닮는 모습으로 변해가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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