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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2-09-17 (월) 21:1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55    
스승이 아니라 아비로(고전 4:14-21)
교회사적으로 볼 때 직분자가 타락한 경우에 교회가 부패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 적이 종종 있습니다. 로마 천주교회가 부패하여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이 그 한 예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직분자가 진정한 구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잘 모릅니다. 그저 고상한 책으로만 여기고 있기에 성경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하더라도 세상적인 말만, 자기 말만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온 교인들에게 세상 말과 자기 사상을 전하는 그 자체가 교회에게는 큰 고통입니다. 그들의 영혼을 굶주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해서 생기는 영적 기근입니다.
   목회자뿐만 아니라 장로, 집사, 권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다른 사람은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열심은 있어서 사람들의 눈에 좋게 보여 장로, 집사, 권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그들이 교회에 많은 고통을 줍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진정한 구원의 의미, 성령의 은혜를 모르기 때문에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흐르는 것을 막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막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성령의 감동으로 쓰인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지 않으니 교회의 운영도 세상적인 방식으로 하게 됩니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이기에 하나님 나라의 원리로 교회가 세워지고 운영되어야 하는데, 세상적인 방식으로 교회를 세우고 운영하려고 합니다. 마치 사업하듯이 마케팅을 하여서 부흥시켜 보려고 합니다. 성령님을 의지하며 말씀과 기도로 세우며 각 심령의 부흥을 꿈꾸는 대신, 개인적인 지식과 지혜로 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교회가 고통을 받게 됩니다. 분란이 생깁니다. 심령이 피폐해져서 신경들만 곤두서고 교회는 힘을 잃어가게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분열되어 힘을 잃어가고 있는 이유를 교인들의 교만한 마음 때문인 것을 알았습니다(4:6). 비록 복음의 씨를 자신이 뿌렸지만 아마도 그 가운데는 많은 교인들이 진정한 구원을 받지 못했거나, 아니면 구원을 받았어도 말씀으로 잘 자라지 못하여 세상적인 지식과 지혜로 교만한 마음이 가득하여 다 된 것인 양 대접 받기를 좋아했던 것을 꾸짖었습니다(4:7-8). 자신을 비롯한 사도들이 세상에서 당하는 핍박과 고난을 빗대어 세상에서 더러운 쓰레기나 만물의 찌꺼기로 대우를 받아도 묵묵히 복음을 위하여 수고했다고 역설했습니다(4:9-13).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서 자신이 그들의 스승이 아니라 영적인 아비로 사역을 해왔고, 아비로서 그들을 다시 만나기를 원한다고 합니다(15절). 여기 스승은 원어에 의하면 가정 교사(tutor), 즉 과외 선생을 말합니다. 물론 앞서서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농부, 하나님의 동역자로(3:9), 또는 건축가로(3:10), 그리스도의 일꾼으로(4:1),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로(4:1) 자신을 표현했다가 이제는 영적인 아비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복음으로써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들을 낳았기 때문이었습니다(15절하). 그저 스승으로서 지식만 가르치고 말아버리는 사람들은 많지만 아비로서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이 많지 않다고 합니다. 물론 아비와 같은 스승도 있습니다만, 그저 지식만 전달하는 스승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영적 아비로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복음으로 낳은 자녀가 있습니까? 없다면 속히 낳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들에게만, 목회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만인제사장인 우리 모두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막 16:15). 복음을 전하여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을, 사명을 받았습니다(마 28:18-20). 믿은 지가 꽤 오래 되었음에도 아직 아무도 복음으로 새 생명을 낳아보지 못한 분들이 많이 있는 것을 봅니다. 이유는 육신적으로도 마찬가지이지만 신랑되신 남편과 관계를 아직 맺지 않았던지, 덜 성숙하여 아직 영적 어린 아이이든지, 훈련을 받지 않아서 어떻게 낳을 줄 모르든지, 아니면 병이 든 경우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한 사람 이상 여러분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이고, 주님을 만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아니 이미 복음을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영적 아비에게 잘 배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신도 영적 아비가 되어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좀 성숙한 성도들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마치 육신의 자녀에게 그 아버지가 하듯이 하면 됩니다. 어떻게?

   무엇보다 먼저 사랑으로 권면해야 합니다. 바울은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14절)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교만한 마음과 왕 노릇하면서 대접 받으려는 것을 꾸짖었는데, 창피를 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권면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목적을 가지고 권면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저 자녀를 노엽게 하기 위하여, 상처주기 위하여 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엡 6:4). 여기 “사랑하는 자녀 같이”의 사랑은 원어에 의하면 아가페 사랑을 뜻합니다. 형제 우애의 사랑, 필레오가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깊고, 강한 사랑입니다.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그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 놓을 수 있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보라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예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나의 구하는 것은 너희 재물이 아니오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오 이에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고후 12:14-15)라고 말입니다.
   이런 사랑의 아버지는 자녀를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이 세상에서 받는 상처들을 받았는지 이해하기를 애쓰고, 치유함을 받도록 도와주려고 합니다. 온유와 관대함으로 권면합니다. 바울은 우리 주 예수님으로부터 온유함을 배웠습니다. 그리하여 “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고후 10:1)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의 영적인 자녀들, 혹은 육적인 자녀들에게 어떤 사랑을 베풀고 있습니까? 온유와 관용으로 권면하십니까?

   그리고 아비는 자녀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16절)고 하였습니다. 본을 보이지 못하는 아버지라면 결코 자녀들에게 존경 받지를 못하기 때문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아버지의 권위가 세워지지 않습니다. 영적인 아비는 반드시 영적인 자녀들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고 시키는 대로 순종하라고 할 뿐 아니라, 내가 하는 대로 따라 하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림도, 찬송과 기도를 함에도,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함에도, 예물을 드리는 삶에도, 사랑하며 섬기는 삶에도, 일상생활에서 하나님 앞에서의 코람데오 삶에서도 나를 본받으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이 자신을 본 받게 하기 위하여 자신에게서 잘 보고 배운 영의 아들 디모데를 그들에게 보낸다고 합니다(17절). 그래서 “저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17절하)고 하였습니다. 즉 디모데를 보면 바울이 어떠한가를 더욱 잘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가르쳤는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영적 아비의 사명에는 분명히 가르침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아비가 말씀을 모르면 가르칠 수가 없겠지요.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물론 가르치는 대로 아비가 그렇게 살아야 본이 되겠지요. 복잡하게 가르칠 필요는 없습니다. 사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십시오. 너무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그래서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이 이해를 잘 하고 받아들여서 기뻐하고 즐거워했다고 하였습니다(막 12:37). 십자가의 복음이 얼마나 단순 명료합니까? 얼마나 쉽습니까?
 
    마지막으로 아비는 자녀들을 훈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징계의 매를 들 수도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 중에서 자신이 다시는 고린도를 방문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면서 교만해진 사람들이 있는데(18절),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대로 속히 그들에게 나아가서 그 교만한 자들이 무슨 말을 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을 알아보겠다고 합니다(19절).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20절) 한 것처럼 말이 아니라 능력 있는 삶, 죄와 유혹을 이기는 능력이야말로 참된 성도의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능력이, 성도의 능력이 세상 것을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 재주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경건의 능력에 있습니다. 그저 말만 하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지금 만약 말만 떠들고 삶에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으면 정말 교만한 것이니 가서 책망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고린도교인들 중에는 성적으로 타락한 자들도 있었고, 시기 질투로 마음이 강퍅해진 자들도 있었습니다.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고, 죄를 거부하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능력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말로만 떠드는 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을 훈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망해야 합니다. 그래도 정히 안되면 징계의 매를 들어야 하겠다고 합니다.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21절)!
   당시에 세상 지식과 지혜로 인기를 끌고 있던 지도자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에게 인기는 많고, 사람들이 그들을 좋아하는데 그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권세가 어디에 있습니까? 복음의 능력이 무엇입니까? 죄를 이기고 치료하는 데에 있습니다. 교인들이 자기 안에 있는 죄를 미워하게 하는 능력에 있습니다. 자신은 죄를 이길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결사적으로 주님을 의지하면서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로 사람들에게 많은 정보를 알려주거나, 흐뭇하게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경건한 영적 아비는 그 자녀들의 삶에 의의 열매가 없고, 교만한 말만 있다면 책망해야 합니다. 때로는 징계의 매를 들 수 있어야 합니다. 온유와 관대한 마음으로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마음 아프지만 무섭게 훈련시켜야 합니다. 자식이 잘 되라고 매를 드는 아비처럼 말입니다. 잘 되려는 자식은 아버지의 책망과 훈계를 듣고 스스로 고치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성도들도 자기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며 스스로 개혁하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계속 고집하면서 고치지 아니하면 주님께서는 할 수 없어서 징계의 매를 들고 두들겨 패십니다. 맞고 아파 울면서 할 수 없어서 돌아서는 그런 어리석은 자녀들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래도 돌아서지 않으면 이미 버림받은 자식입니다. 아니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애초부터 택한 자녀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오늘 말씀은 영적 아비들에게, 그리고 영적 자녀들에게 동시에 주시는 교훈이 큽니다. 여러분들이 영적 아비라면 영적 자녀들에게 아가페 사랑으로 권면해야 합니다. 자녀들을 이해하면서 온유와 관대함으로 권면해야 합니다. 그저 지식만 전달하는 스승이 아닙니다. 의붓 아비도 아닙니다. 내가 낳은 자녀로 이기에 그만큼 소중합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자녀 앞에서 본을 보이고 살려고 애를 씁니다. 담대히 나를 본받으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완전한 삶은 아니지만, 아직 부족한 면은 있지만 그래도 영적 자녀에게 나의 신앙생활을 본받으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르쳐야 합니다.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때로는 훈계하며 책망해야 합니다. 징계의 매를 들 수도 있습니다. 당연하지요. 정말 사랑하는 내 자녀라면 자녀가 잘 되라고 징계합니다. 물론 조심해야 합니다. 감정적으로 징계함으로 자녀에게 상처를 주면 곤란합니다. 노엽게 하면 안 됩니다.
   또한 영적 자녀로서 여러분들은 아비의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서로 이해하고 온유와 관용을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적 아비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입니까? 존중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아비를 본받아야 합니다. 잘 배워야 합니다. 훈계와 책망까지도 잘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징계의 매라도 달게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변해야 합니다.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거룩한 삶, 경건한 삶, 주님을 닮아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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