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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2-08-24 (금) 03:45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768    
도피성(신 19:1-13)
우리가 세계의 열악한 많은 곳과 달리 이 풍요로운 미국에서 비록 테러의 위협이 있지만 자유를 누리며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평안한 가운데 계속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 살려고 하면 하나님의 손길을 믿어야 함과 동시에 우리의 책임도 감당해야 합니다. 바로 우리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사실 어쩌면 외적으로 눈에 보이는 테러의 위협이나 강도, 살인의 위협보다도 더 심각한 것이 내적인 죄의 욕망이라고 성경은 일관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자꾸 이 세상이 불안하여지고 험악해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죄의 욕망을 따라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로 재앙이 일어나서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도피성 제도에 관한 규례입니다. 이미 모세가 이미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출 21:13, 민 35장, 신 4:41-43), 이에 대하여 본문에서 재삼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이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되면 거기에도 3개의 도피성을 더 설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1-3절). 이미 요단 동편에 3개를 두었기 때문에 하나님 규례대로 총 6개가 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도피성은 고의가 아닌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이 피하여 살 수 있는 곳입니다. “살인자가 그리로 도피하여 살만한 경위는 이러하니 곧 누구든지 본래 혐원이 없이 부지 중에 그 이웃을 죽인 일”(4절)의 경우입니다. 여기 혐원이라는 말은 미리 생각해두는(premeditated) 것을 말합니다. 즉 미리 사람을 죽이려고 계획한 살인이 아니라면 도피할 수 있는 곳을 설정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말씀에 순종하며 죄를 짓지 않고 살기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죄 중에 가장 치명적인 죄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빼앗는, 사람의 피를 흘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인한 사람은 반드시 살려두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출 21:12).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고의로 살인한 것이 아니고, 본문에서 나오듯이 생각지 못한 실수로 사람을 죽게 했을 때 이런 살인범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의가 아닌 실수로 사람을 죽게 했을 때 이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사람이 세상에서 고개를 쳐들고 당당하게 다니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정해 놓은 도피성으로 도망쳐서 거기서 죽을 때까지 그 성에서 나오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숙하게 하는 것입니다. 고의는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을 죽였으니 이 후로는 절대로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하고 그 성 안에서 살면 절대로 죽임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도피성은 오늘날 믿는 우리들이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놓치지 않고 은혜 안에 사는 아주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 줍니다.

   19장 전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 그 땅에서 쫓겨나지 않고 평안히 사는 방법 세 가지를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째는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지 않는 것이고(1-13절), 둘째는 남의 땅을 빼앗지 않는 것이며(14절), 셋째는 재판에서 위증하지 않는 것입니다(15-21절).
   오늘은 그 첫째로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지 않아야 하는데, 실수로 그랬을 경우 도피성을 설정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세상적인 눈에 보이는 욕심보다 심각한 것이 내적인 미움이나 분노의 감정입니다. 그런데 그 옛날에는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하여 분노를 품게 되면 반드시 가서 그 사람을 죽였던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땅에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살인자는 살려두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고의성이 없이 실수로 살인한 자는 도피성을 설정해서 그리고 피하도록 했습니다. 길을 잘 닦아 놓아서 빨리 도망쳐 복수의 칼을 피하도록 했습니다(3절). 한 예를 5절에서 설명합니다. “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 이웃을 맞춰 그로 죽게 함 같은 것이라 이런 사람은 그 성읍 중 하나로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누군가 함께 숲 속에 벌목을 하러 갔다면 친구나 동료일텐데, 생각지도 않게 손에 있던 도끼 자루에서 도끼가 빠져서 옆에 사람이 죽게 되었다면 정말 억울한 일일 것입니다. 물론 가해자가 전혀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미리 도끼질을 하기 전에 도끼가 안전한지 점검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한다고 했지만 때로 생각지도 않는 사고가 터져서 사람이 죽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것 때문에 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고의가 아닌 경우 스스로 자기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 실수로 사람을 죽게 한 사람이 그냥 있으면 안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빨리 도피성으로 도망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아무리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해도 관습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피의 보수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그에게 본래 혐의가 없으니 죽이기에 합당치 아니하나 두렵건데 보수자의 마음이 뜨거워서 살인자를 따르는데 그 가는 길이 멀면 그를 따라 미쳐서 죽일까 하노라”(6절)라고 한 것입니다. 즉 도피성 제도가 피의 보수자에게도 좋은 것입니다. 복수한다고 고의적인 살인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왜냐하면 당시 사회에서는, 그 집안에서는 피의 복수를 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 “보수자”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고엘’이라고 하는데, ‘무르다’ ‘배상하다’ ‘구해내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룻기에서는 이 단어가 기업 무를 자로 사용되어 남편을 잃은 룻을 대신하여 보아스가 그녀를 살리는 ‘기업을 무를 자’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본문 6절에서는 친족 중에서 가까운 사람이 살인을 당했을 때 가장 가까운 친족이 고엘이 되어서 복수를 하는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제도가 아닙니다. 가나안 땅에서 오래 내려오던 관습이었습니다. 요즘 놀라운 것은 이런 관습이 아랍권이나 인도에서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도피성 제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절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나라 안에서는 피의 복수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7-10절). 그런 악한 세상 관습은 따라 하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즉 고의적인 살인은 어떤 경우에도 허용되지 않고 아무리 원한과 미움이 있어도 하나님께 맡겨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규례를 따라야 할 것인지 집안이나 사회의 관습의 요구를 따라야 할지 갈등이 생기는데 살인자가 도피성으로 도망하면 살인을 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고의로 살인하고 나서 도피성으로 피하게 되면 그가 속한 본래 성읍 장로들이 그를 잡아서 보수자에게 넘겨 죽이게 하여 무죄한 피흘린 죄를 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11-13절).

  물론 도피성으로 피한 살인자는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 있었습니다(민 35장). 그 성에 들어가면서 제사장에게 반드시 자기가 왜 이 곳에 피하는지 그 이유를 밝혀야 합니다. 그래야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죽을 때까지 성 밖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철저하게 자신의 삶의 한계를 도피성으로 제한하고 아무리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해도 성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 단 예외가 있는데 대제사장이 죽으면 과거의 모든 죄가 다 지워지기 때문에 도피성을 나와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민 35:28). 그런 의미에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자유롭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미움의 감정, 분노의 감정이 생길 수 있습니다. 죄성이 있기에 누구에게 내 자신이나 가족이, 친척이 피해를 당하거나, 상대방이 그들에게 너무 악한 짓을 했다면 복수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그것까지도 하나님께 맡기고 절대적으로 개인적인 복수나 보복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선으로 악을 갚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롬 12:17-21). 물론 당하고도 가만히 있으면 더 무시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까지도 하나님께 맡기고 참을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평안을 주십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공동체 안에서 미움과 분노로 하나님 나라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피 흘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고성조차도 질러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모든 혈기와 분노의 감정을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께서 평화를 주시는 것입니다.
   도피성이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십니다. 억울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긍휼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십니다. 행동의 동기, 속마음을 보시고 판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실수인지, 고의인지 아시는 분입니다.
   또한 우리 모두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데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직접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이라고 외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을 죽게 한 죄인 중 한 사람이 아닙니까? 이 진리를 늘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직접 다른 사람들을 죽이지는 않았어도 마음속으로는 미운 사람들을 죽이고 싶어 했고 또 죽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성경은 누구를 미워했다면 이미 살인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요일 3:15). 이런 엄청난 죄를 지은 우리들이 피할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입니다. 주님에게로 나아가기만 하면 용서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마치 도피성으로 가는 길이 멀지 않고, 잘 닦여져 있어서 신속히 갈 수 있었던 것처럼 죄인들은 누구나, 어디에서든지 쉽게 주님에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미 살인죄를 인정하고 도피성인 주님 안에 있는 줄 믿습니다. 이제는 이 도피성 밖으로, 주님 밖으로 나가면 안 됩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욕망을 절제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 수 없습니다. 주님의 보호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고 절제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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